韓 법원, 日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조치에
日 ‘추가 보복’ 범위 어디냐에 관심 집중
수출 금지시 삼성․SK하이닉스 투자 중단까지
中반도체 빠른 추격까지 더하면 입지 악화 우려
반도체 업계 ‘비상경영 체제’유지, 상황 파악중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미·중 무역분쟁과 함께 한·일간 수출금지 갈등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절차를 선언한 데 이어 우리 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에 대한 법원 결정문을 공시송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 강제매각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데 대해 4일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며 보복 대응을 시사했다. 일본의 추가 수출 규제 강화 조치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대두하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최근 한일 갈등이 재고조할 것으로 예상되자 내부적으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논의 중이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전 세계 해외법인 등을 통한 협력사 상황 등 관련 정보 수집도 진행 중이다.

우리 업체들이 가장 우려를 표하는 대목은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생산 설비 공급을 중단하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업체이 참여 벽이 높고, 이로 인해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제품 생산의 상공정 장비 설비는 일본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는 셀 파워가 높지만, 마찬가지로 일관공정설비(FAB)를 운영하는 기업도 소수이며, 이들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형 고객인 만큼 바잉 파워도 적지 않아 업체간 공생을 모색해왔다.

만약, 일본 정부가 설비 수출을 중단시키면 우리 업체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달 평택캠퍼스의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투자, 이달 초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투자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중국 우시 공장 설비 투자를 위해 중국 법인에 3조3000억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설비를 들여오지 못하면 투자는 진행할 수 없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여전히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는 실정으로 알려져 있고, 리소그래피 등 핵심 공정 장비는 네덜란드 ASML 등 유럽과 니콘 등 일본이 거의 독점하는 상황이다.

소재와 관련한 추가 수출 규제에도 신경이 쓰인다. 현재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수출 규제 대상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은 규제 이후 국내 기업들이 수입선을 다변화하거나 국산화 노력을 진행하며 맞대응한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기체 불화수소는 미국 화학사 등 해외 업체로, 액체 불화수소는 국내 기업 위주로 조달처를 다변화했고, 일본 기업 JSR과 벨기에 연구센터 IMEC가 합작해 설립한 포토레지스트 업체로부터도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만약 규제 대상을 다른 반도체 등의 핵심 소재로 확대할 경우 제품 생산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마스크나 실리콘웨이퍼 등 핵심 소재와 부품들은 국산 등 대체재가 제한적이고 여전히 일본의 기술력이 높은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의 성장 전략이 차질을 빚으면 맹추격 중인 중국 반도체 기업과의 격차가 좁혀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내 128단 낸드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100단 이상의 V낸드 양산에 돌입했다.

이 가운데 최근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올해 말에 128단 적층형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을, CXMT는 연내 17나노 공정 기반의 D램 양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공세에 따라 일본 기업들이 섣불리 한국 대신 중국기업과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한국과의 상황이 계속 나빠질 경우 생존을 위해 일본 기업들이 중국과의 제휴 카드를 외면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중국이 손 잡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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