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선서 (사진  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선서 (사진  연합뉴스 제공)

 

10일 거행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은 이벤트로서는 성대하고 성공적이었다. 초청된 4만1000 국민의 응원은 새 정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예포는 우렁찼고, 대통령의 걸음과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74년간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이자 금단의 영역이었던 청와대 대문은 활짝 열려 국민에게 돌려졌다. 마침내 윤석열호가 닻을 올렸다. 

취임식의 이면은 어땠을까. 새 정부 내각은 총리도 없고, 장관들도 듬성듬성 이가 빠진 어수선한 모습으로 임기 첫날을 시작했다. 대통령 취임식을 알리는 식사(式辭)를 구정권의 김부겸 총리가 한 것은 기막힌 광경이었다. 마치 깨진 쪽배에 실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 던져진 모습이다. 

실제 윤석열 정권이 마주한 대내외 여건은 최악이다. IMF 외환위기로 곳간이 거덜 난 나라를 물려받았던 김대중 정부 이후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국가를 경영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무엇보다 대외환경이 열악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 교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미국의 긴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글로벌 인플레이션, 중국 경제의 침체 등이 한꺼번에 우리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을 축으로 한 서방과 중·러의 신냉전, 북한의 핵 위협은 우리 외교·안보·통상의 운신을 제한하고 있다. 국내 과제도 첩첩산중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고부채의 사면초가 속에서 나라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막막한 처지다. 초박빙의 대선 승부에서 보듯 국론은 절반으로 찢어져 있다. 

이런 난국을 헤쳐나가려면 국력을 결집하는 통합과 협치, 소통이 절실하지만 대선 이후 지난 2개월간의 흐름을 보면 싹수가 노랗다. 정치판은 막장이다. 우선 민주당은 아직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패장인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인천 계양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했고, 대선 당시 당 대표였던 송영길 의원은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의회 권력을 움켜쥔 168석의 민주당은 검수완박법 을 밀어붙이고 새 정부 총리 인준도 거부하면서 내전 상태로 국회를 끌고 갈 태세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모든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긴 채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의 품격이나 능력이 의문스럽다. 새 정부의 키를 잡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민생이 위기인데 대선 이후 2개월간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내각 인선은 불통과 독선 그 자체였다. 국정의 구체적 밑그림을 그려줄 것으로 기대됐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구멍 숭숭 뚫린 얼기설기 엮은 정책으로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뚫겠다는 것인가.

난마처럼 얽힌 국정의 타개책이나 새 시대의 비전을 윤 대통령 취임사에서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을 겨냥 민주주의의 적인 반지성주의를 비판했지만 취임사의 키워드는 35차례나 언급한 '자유'였다.  사회 갈등을 키우는 지나친 양극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성장의 토대로 자유를 강조했다.

유일한 약속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었다. 보수·진보 언론이 입 모아 주문한 통합과 소통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실루엣만 있고 손에 잡히는 건 없는 참 공허한 취임사라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아쉬움은 크지만, 취임사에 에이브러험 링컨이나 존 F 케네디의 연설처럼 기억에 남을 명언·명구가 없다고 해서 크게 흠잡을 일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남긴 약속을 부도내는 바람에 두고두고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말이 아닌 행동, 구호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정부가 잘할 것이라는 국민은 최고 50% 선이었다. 정권을 상실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지지율이 40%이니 난형난제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 기대가 이처럼 바닥인 적은 없었다. 이는 새 정부에 부담일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 지지율이 낮다는 것은 새 정부의 ‘희망 자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엉뚱한 헛발질, 생뚱맞은 권력 놀음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비판받는 일도 없으리라. 조금만 잘하면 지지율이 쑥쑥 뜨지 않을까. 

스스로의 역량을 가늠하면서 크고 거창하게 잘하려 하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국정의 보폭을 키우길 바란다. 몸을 낮추고 괜한 갈등을 부르지 말라. 늘 초심을 새기고 문재인 정부처럼 진영이나 지지자만이 아닌 전체 국민을 바라보라. 싸울 땐 독하게 싸우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리민복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게 대통령 취임식의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성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김종현 본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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