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주 일본 히로시마에서 나온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은 중국을 집중 겨냥했다. 성명은 “우리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특정 첨단기술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못 박았다.

특정 첨단기술은 곧 반도체다. 중국은 즉각 보복 카드를 꺼냈다. 보안을 이유로 미국 마이크론 제품의 구입을 금지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다.

미·중 반도체 전쟁의 전초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다. 2014년 중국은 반도체 굴기(屈起)를 선언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세웠다. 이때만 해도 미·중 관계가 괜찮았다. 중국 반도체 회사 칭화유니는 미국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다. 화들짝 놀란 미국이 급제동을 걸었다.

본격적인 반도체 전쟁 1라운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다. 트럼프는 대놓고 중국을 견제했다. 2018년 4월 미국 상무부는 대이란, 대북한 제재 위반을 이유로 중국 ZTE에 대해 미국 기업과 거래를 금지했다. ZTE는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다.

같은 해 12월 캐나다 정부는 화웨이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을 전격 체포했다. 물론 그 뒤엔 미국이 있었다. 중국 1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는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멍완저우는 3년 가까이 가택연금 상태로 있다 2021년 가을 미·중 화상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전세기 편으로 귀국한 멍완저우는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반도체 전쟁 2라운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현재진행형이다. 신중한 바이든은 열혈남아 트럼프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딱 하나만 예외다. 중국 때리기는 두 사람이 난형난제다.

2022년 8월 바이든 대통령은 칩스법(CHIPS and Science Act), 곧 반도체법에 서명했다.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굳히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관련 산업에 수백억달러를 지원한다. 동시에 중국을 반도체 생태계의 외톨이로 만들려 한다. 이 대열에 서지 않으면 칩스법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일본은 미국 편에 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지난 23일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관련 23개 품목을 수출관리 규제 대상에 추가했다. 여기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작에 필요한 설비, 식각장치 등이 포함됐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 고순도 화학물질 분야에서 세계 첨단을 달린다.

‘칩 워’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독과점을 꼽는다. 그는 “장비, 화학물질, 소프트웨어 등의 요소가 단지 몇 개, 때로는 오직 하나의 회사에 의해 좌우된다”며 “이토록 적은 수의 기업에 이렇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 영역은 오직 반도체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극자외선 머신 공급은 네덜란드 기업 ASML에 100% 의존한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 동아시아, 유럽 3개 축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동아시아는 한국, 대만, 일본을 말한다. 이들이 뭉치면 후발국 중국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미국이 노리는 게 바로 이거다. 한때 석유를 주무르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했다. 21세기 석유는 반도체다. G2 패권 다툼에서 반도체는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다.

한국이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명백하다. ‘굴기’에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은 한참 뒤진다. 당연히 한국은 첨단 기술력을 갖춘 서방국들과 연대를 맺는 게 낫다. 그래야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서 현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 비메모리 칩(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도 서방 선진국들과 공조는 필수다.

G2 패권 경쟁은 적어도 수십년간 지속될 상수다. 볼멘소리로 정경분리를 외쳐봤자 입만 아프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지금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에 속하는 게 유리하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기업들은 정치와 안보까지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칩워)”.

그러다 만약 중국이 마이크론에 하듯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보복하면? 밀러 교수는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한국 기업은 기술 우위를 지켜나가기 위해 더 노력하는 길뿐”이라고 말한다. 좋은 전자제품은 좋은 반도체가 만든다. 한국 기업이 미워도 반도체가 세계 최고라면 중국도 한국산 반도체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 기업들이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