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넘고 있다.(공동취재단)

 

[서울와이어 염보라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30분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오후 9시27분 북으로 다시 돌아갔다. 2018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일정중 남측에서 보낸 시간만 7시간 넘짓. 두 정상은 MDL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는 것으로 평생 기억될 역사적인 순간을 시작했고, 또 만들었다.

◇ 65년만에 남쪽 땅 밟은 北 위원장… 文 대통령 깜짝 월북 '최고의 순간'

9시30분. 남북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김 위원장이 지금 높이 5㎝ 하얀색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이로써 MDL이 생긴지 65년 만에 북측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연출됐다. 

한반도의 푸른 기상을 상징하는 푸른색 계열 넥타이를 맨 문재인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악수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던 두 정상이 갑자기 MDL을 넘어 월북했다. 예상에 없던 '돌발행동'이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었다. 전세계가 입을 모은 최고의 순간은 이렇게 연출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7일 공식환영식에서 국군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공동취재단)

 

이후 △공식환영식 △국군의장대 사열 △남북수행원들과의 인사를 마친 남북 정상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평화의 집으로 이동했다. 판문점은 공동경비구역이지만, 평화의 집은 우리 측 구역에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주최 역할을 맡게 됐다. 김 위원장은 평화의 집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작성했다.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좋은 징조였다. 

100분가량의 오전 정상회담이 종료된 후, 김 위원장은 검정색 벤츠 차량을 타고 북측으로 돌아가 별도 오찬과 휴식시간을 가졌다.

 

김 위원장의 판문점 평화의 집 방명록(공동취재단)

 

◇ 분단의 상징이 평화의 상징으로, 뜻깊었던 오후 친교 일정 

4시30분께 재개된 오후 일정은 △공동식수 △'도보다리' 친교산책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1994년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길' 인근 군사분계선(MDL) 위에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소나무를 함께 심었다. 이 소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소나무로, 정부대전청사 서현관 정원에 자리잡던 반송이다. 소나무를 심은 뒤 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한강수를 뿌렸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는 문구가 새겨진 표지석도 세웠다. 문 대통령은 “소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을 심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식수 장면(공동취재단)
도보다리에서 단독회담 중인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공동취재단)

 

공동식수를 마친 두 정상은 곧장 MDL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배석자 없는 오롯이 둘만의 시간이었다. 두 정상은 1953년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 감독위원회가 만든 이 도보다리를 건너며 30분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5시18분 무렵, '판문점 선언'이 진행될 평화의 집으로 돌아왔다.

◇ 기다리던 '판문점 선언'… 김정숙·리설주 퍼스트레이디의 만남 

6시2분. 남북 정상이 평화의 집 1층 로비에 테이블을 두고 앉았다. 전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정상은 판문점 서명식을 가졌고, 건물 밖으로 나와 차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보이고 있다.(공동취재단)

 

두 정상의 선언문 발표에 전세계인이 박수를 보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린 이도 많았을 것이다. 선언에는 올 가을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등 남북 정상의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 설치를 비롯해 종전선언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등이 명문화 됐다.

오후 일정 재개 전 "전세계인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던 두 정상은 떨리는 목소리로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며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그간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고 평했다.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공동취재단)

 

만찬을 앞두고는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가 방문해 사상 첫 남북 퍼스트레이디간 만남을 연출했다. 2시간 넘짓 즐거운 만찬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이 역사적인 상봉과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북과 남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만찬을 마친 뒤에는 김 위원장 부부를 위한 별도의 환송 행사 ‘하나의 봄’이 이어졌다.
 

◇ 공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北 전문가들 "정상회담 정례화하고 후속 논의 체계화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판문점 선언'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는 한편, 이행 내용을 구체화 하기 위한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경제연구소는 28일 '2018년 남북정상회담 진단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의미 있는 날에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 추진, 2018년 아시안게임 공동 진출 등 시점을 구체화한 것이 이번 합의의 주요 특징"이라며 △한반도 비핵화 의지 재확인 △ 8·15 이산가족 상봉 개최 △철도, 도로 연결·현대화 우선 추진 등에 합의한 데 대해 높이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열린 환송 공연이 끝난 뒤 떠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공동취재단)

 

다만 남북 합의 못지않게 이행 절차와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해정·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 합의는 반드시 이행된다는 합의→이행→신뢰 구축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후속 논의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빅터 차 미국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외교적 성과로서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은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를 상당히 완화시켜줬다"며 "지난 한 해 동안 이어져온 한반도 주변의 위기 상황을 해소하는 중요하고 긍정적인 첫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이 미국과 같은 시각(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불문명하다"며 "북한이 한반도 긴장 완화 대가로 경제 원조를 받으면서 핵무기를 계속 소유하고자 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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