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출장 사실상 불가, 부품 조달도 위태
입국제한 조치 화물까지 확대되면 수출도 불안
반전의 묘수도 불투명,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빠르게 퍼지면서 한국경제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2~3주가 향후 상황을 결정지을 잣대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기업들은 섣불리 기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국내기업들의 현실과 한국경제의 대응 방안을 시리즈로 짚어보기로 한다.

 

부산 신항만에 정박한 현대상선 소속 컨테이너선이 수출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현대상선 제공
부산 신항만에 정박한 현대상선 소속 컨테이너선이 수출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현대상선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대기업 해외영업팀 매니저 K씨(38)는 지난달 말 예정되어 있던 베트남 출장을 못 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베트남 고객사가 정부 방침이라면서 미팅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통보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소액이지만 거래를 꾸준히 이어가면서 수년 간 공들여 왔고, 두 달여 마다 한 번씩 본사를 방문해 제품 사용법과 기술을 제공하면서 경영진들과도 얼굴을 터왔던 덕분에 올해부터 대규모 물량을 할 것으로 기대됐는데 물거품이 될 지경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에 사무실 주변 상가가 걸렸다는 보도가 나온 뒤 회사는 24일부터 당분간 전 직원들이 조를 나눠 재택근무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안 하니 업무를 더 많이 할 수 있겠지라고 마음을 다져보지만, 집중이 잘 안 된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그렇게 편했던 메신저로 회의를 하니 뭔가 허전하고, 거래처들에 전화로 연락하자니 필요한 때 바로 통화도 안 되어 업무 진행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코로나19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TV를 틀었지만, 듣고 보다보니 공포심이 커져 더 일에 집중이 안 된다. 그렇다고 끄면 궁금한 마음이 커져 불안감만 더해 간다. K씨는 “손발이 묶인 기분이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기 때문인지 회사로 돌아가지 못 하는 꿈까지 꾼다”며 답답해했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회사 나오지 마세요.”

K씨와 같이 현재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느닷없는 ‘회사 출근금지’ 지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루 밤 자고 일어나면 급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생각하면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수 년~수십 년간 굳어진 평일 출퇴근 생활패턴이 갑자기 바뀌니 생체 리듬도 엉망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6일까지 본사 등 서울 경기지역 근무자를 대상으로 자율적 재택근무를 하며, 현대모비스는 일반 직원들은 절반씩 나눠서 격일 재택근무를 한다. SK그룹은 지난달 25일부터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네트웍스, SK실트론 등에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임신부 직원에게 다음 달 8일까지 2주간 특별휴가를 보냈다.

삼성그룹은 지난 1일까지 전 계열사에서 임산부 직원이 재택근무를 한 뒤 2일부터 출근했으며, 포스코는 2일부터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임직원들이 교대근무를 실시한다. LG그룹은 임산부 직원은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재택근무하고 어린 자녀를 둔 직원들은 돌봄 휴가를 사용토록 했다.

한시적인 조치지만, 기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등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 근무 체제는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업장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경우 사업장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생산라인 가동 중단 및 폐쇄가 이어지고 있다. 부품과 원재료를 공급하는 협력업체, 특히 대구ㆍ경북에 소재한 업체들이에서도 생산이 멈추면서 완제품 생산에도 차질이 빚고 있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비롯된 와이어랑 하니스 공급 중단과 유사한 사태가 이미 국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기술 지원을 나가고 싶어도 감염 우려 때문에 섣불리 갈 수도 없다.

고정급여를 받는 사무직과 달리, 생산직은 급여에서 특근․야근 수당 등의 비중이 높다. 일을 못하면 만큼 수입이 줄어 가계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80개국 입국 금지 ‘고립’되고 있는 한국

대부분이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기업의 입장에서 한국민에 대한 외국의 입국 제한 조치 확산은 더욱 충격적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2일 오후 3시분 기준 한국발 방문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검역을 강화하는 등조치를 하는 국가·지역은 81곳(입국금지 조치 36개, 입국절차 강화 45개 국가․지역)이다. 외교부가 정부의 방역 노력 등을 설명하며 입국금지 등 과도한 조치를 자제하도록 외국 정부를 설득하고 있지만 막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여행은커녕 사업을 위한 출장길도 모조리 막히며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고립됐다. 바이어와의 미팅뿐만 아니라 본ㆍ지사간 출장도 사실상 모두 취소됐다. 기업들은 화상 회의 등 대체 시스템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조치가 장기화 될 경우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출입 화물 운송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에서 생산한 완제품은 물론 해외 생산법인으로 보낼 반제품ㆍ중간재 등이 한국내 상황에 따라 제대로 생산되지 못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반입 화물에 까지 검역 절차 조치가 취해지면 납기를 맞추지 못해 클레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수출 화물이 줄어들면 어려움에 처한 항공ㆍ해운업종의 경영난이 가중될 전망이다.

가정에서 기업 사업장, 수출입 항구까지.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한국 산업의 가치망이 흔들리고 있다. 3월부터 영업과 생산을 극대화해 하반기 수출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데, 시작도 못하고 있다. 생산과 수출 모두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 기업인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대기업 고위 임원은 “3월 초순까지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가 나오지 않는 다면 정말 위기다”고 했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