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두 달여 만에 1219원에서 1187원
환율 5%만 떨어져도 수백억~수천억 평가손
“코로나19 확산에 환율 난까지 겹치나” 우려

로테르담 항에 입항 중인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현대상선 제공
로테르담 항에 입항 중인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현대상선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2개월여 만에 급등에서 급락으로 돌아선 원·달러 환율이 가뜩이나 사정이 어려운 수출업계에 부담을 안기고 있다.

1월 초순까지 1160원 내외였던 원·달러 환율은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발표 직후 상승세를 기록, 2월 24일 1219원까지 뛰어 올랐다. 이는 지난 3년간 최고치였던 지난해 8월 16일 1223.50원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이후 환율은 계속 떨어지더니 3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코로나19 기준금리 0.5%p 인하 발표를 전후해 하락폭은 더욱 커져 3일(한국시간)에는 3년 2개월 만에 최대 낙폭인 20.0원이 떨어졌고, 4일 또 다시 5.20원이 낮아진 1187.80원에 거래를 마쳤다.

▷기준 환율 1150원대…일부 기업 환차손 입은 듯

환율은 수출업체들에게는 목숨 줄이다. 환율이 떨어지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출기업은 달러로 제품을 팔 경우 한화로 환전해 받는 돈이 그만큼 줄어든다. 반면, 수입업체들은 수입용 원자재 구매 대금을 줄일 수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해 이를 다시 수출하는 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환 관리를 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한국의 수출과 수입 모두 위축될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생산 활동 중단 등으로 3월 이후 수출용 원자재 수입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수입액 절감으로 수출액 감소분을 상쇄할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한 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 기준 환율을 얼마로 정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준 환율은 통상 기업들은 한 해 수입과 지출 등 예상치를 작성할 때 적용한다. 그해 원․달러 환율이 기준 환율 이상 이어지면 제품을 많이 팔거나 적게 파는 것에 관계없이 평가이익(환차익)을, 미만이면 평가손실(환차손)이 발생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거액을 벌거나 잃을 수 있다. 따라서 기준 환율 평가손실을 입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각 기업들은 영업비밀로 간주해 기준 환율 공개하지 않지만, 한국무역협회가 작년 말 회원사들에게 설문조사해 공개한 올해 적정 원·달러 환율은 1200원 내외, 좀 더 정확히는 지난해(1월~11월 20일) 원·달러 평균 환율인 1165원 수준이다. 이를 토대로 대기업의 기준 환율 1100원대, 중견·중소기업은 1150원대로 책정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이 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지만 떨어지면 대규모 평가손실이 우려된다. 하지만 올해 경기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기준 환율 높이 잡은 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은 벌써부터 평가손실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수출업체 관계자는 “환율이 실제 수출과 수입에 미치는 것은 상황이 발생한 지 3~6개월 후에 일어나기 때문에 현재는 변동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자체적인 환율 대응체제를 보유한 대기업보다 그렇지 못한 중소 협력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여 협력사들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환율 5% 하락 시 3444억여 원 손실

주요 상장사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각사가 처한 환위험 예상이 언급되어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5% 떨어지면 3444억8800만원, SK하이닉스는 환율이 10% 하락하면 4455억9000만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LG전자는 10% 내리면 403억7800만원, LG디스플레이는 5% 떨어지면 387억2500만원의 손실을 입는다.

현대자동차는 원·달러 환율이 5% 하락하면 928억1000만원, 기아자동차는 10% 하락 시 1764억3000만원이 사라진다. 대한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약 790억 원 평가손실이, 약 300억 원 유동성이 줄어든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전문가들 “하락은 일시적, 1120원대 회복 전망”

각 기업들은 외화의 유입과 유출을 통화별, 만기별로 일치시킴으로써 외환리스크를 제거하고, 환율전망에 따라 외화자금 수급의 결제기일을 조정하는 등 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제조업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소비심리도 위축되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 환율 하락까지 더해지면 기업들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다행히 외환 전문가들은 원․달러 하락 상황이 오래가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준 인하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확산하느냐다. 이 경우 달러가 추가 하락보다는 보합권에 머물 수 있어 원·달러도 추가 하락보다는 횡보 내지 상승할 수 있다”며 “뉴욕증시에서 투자심리가 안정되는지가 주요 변수”라고 전했다. 그는 또 “원·달러는 당분간 1100원대 후반에서 1200원 내외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연준의 파격적 금리인하로 다른 중앙은행들도 (인하) 정책여력이 생겼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하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반영한다면 원·달러는 하단을 다지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화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좋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최근 7거래일 동안 5조원 가까이 팔았다”며 “2분기까지 원·달러는 1170원에서 1230원 사이에서 등락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달러화 움직임, 위험자산 동향, 위안화 흐름이 최근 원화환율을 결정하는 3가지 요인이었다. 최근 미국 주식이 약세를 보이면 달러화도 같이 하락하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영향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며 “코로나19 감염 순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중국이 먼저 패닉을 겪었고 다시 정상가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주까지 원화약세도 이 같은 요인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위안화가 원화에 더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준도 추가 통화정책 여력을 소진했다는 생각들이 지난밤 미국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전 세계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리인하) 정책에 한계를 느끼는 듯싶다”면서도 “연준이 첫 포문을 열면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연쇄적인 통화·재정정책이 예상된다. 원·달러는 1180원에서 지난주 고점인 1220원 사이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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