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현 금융증권부 부장
문지현 금융증권부 부장

영원할 것만 같은 권력이나 아름다움도 흥함이 있으면 언젠가는 쇠하게 마련이다. 권력의 무상과 덧없음을 비유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인사 태풍이 불어닥친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십년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이라는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다. 

금융권은 지배구조 갈등과 정부 입김으로 입성하는 낙하산 인사를 막으려면 CEO가 장기 집권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과 금융권 수장=한 사람당 세 번씩!(3연임)이 암묵적인 공식이라는 현실적인 의견, 여기에 4연임의 기록을 세우려는 현임 CEO들의 복심 때문에  '고인 물은 썪는다'며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2000년 이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금융지주회사 회장 중 3연임에 성공한 이는 김정태 현 하나금융지주 회장까지 포함해 3명이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그룹회장은 은행장 경력까지 포함해 18년간 은행과 지주사 CEO로 활동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도 올해 연임에 성공하면서 '장수 CEO'의 문턱에 들어섰다. 

장수 CEO의 대표 인물로는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이 꼽힌다. 원래 씨티은행 출신이었던 하영구 회장은 2001년 한미은행 은행장으로 발탁돼 2004년까지 3년간 한미은행장을 맡았다. 2004년 한미은행이 한국씨티은행에 합병되면서 하영구 회장이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2014년까지 10년간 한국씨티은행장을 역임했다. 오랜 기간 은행장을 맡으면서 하영구 회장에게는 '직업이 은행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현재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3연임에 도전 중이다. 이미 3연임을 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KB금융은 다른 금융사들이 물린 사모펀드 사태를 피해 간 점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2분기(4∼6월) 경영실적 1위를 달성한 윤종규 회장의 3연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내년 임기가 끝나는 김정태 회장의 연임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연임하지 못할 경영상 실책이 없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지만, 일각에선 김 회장이 연임하지 않고 후계자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말도 돈다. 이에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과 이진국 부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방은행에서는 임용택 전북은행장과 송종욱 광주은행장·서현주 제주은행장이 각각 4연임, 3연임을 노리고 있다. 임용택 전북은행장은 JB금융그룹 대표 중 가장 긴 경력을 자랑한다. 6개 지방은행장이 모두 임기를 마치는 상황에서 지방은행 중 유일하게 은행 출신이 아닌 점이 눈에 띈다. 이에 임 행장은 자행 출신인 송 행장과 비교되며 연임 때마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송 행장은 노조와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 은행 밖으로 나갔다가 은행장으로 컴백하면서 살아있는 신화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3연임 도전에도 내부 직원들이 힘을 실어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서현주 제주은행장은 신한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소매금융 전문가로 꼽혀 2018년 3월 제주은행장으로 선임됐지만, 인사에 대한 비리 폭로전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대대로 제주은행장은 신한은행에서 '기업그룹'을 담당한 부행장 몫으로 돌아갔는데, 소매금융 쪽에만 몸담았던 서 행장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다.

갑자기 금융계 원로인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과 윤병철 전 하나은행 회장의 인생역정이 떠오른다. 라 전 회장은 행장 3연임에 이어 회장 4연임을 욕심내다가 경영 내분으로 오명을 남겼다. 반면 윤 전 회장은 주위의 연임 권유를 뿌리치고 일찍이 김승유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이는 자신의(기성)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단단한 대지에 새로운 세대의 생각으로 꾸려나가 보라는 아름다운 권력 이양으로 '박수받을 때 떠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의 계속된 연임 행진, 이대로 괜찮을까? '금융통이 없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된 문재인 정권의 금융 수준을 가늠하는 시금석은 이번 금융권 최고경영자 인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