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픽셀 신작 ‘그랑사가’ 주연 성우 인터뷰
“OTT 시장 성장, 성우 시장 확대 영향”
“감정 연기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어”

왼쪽부터 김지율 성우, 송하림 성우 사진=이태구 기자 
왼쪽부터 김지율 성우, 송하림 성우 사진=이태구 기자 

[서울와이어 한동현 기자] “‘그랑사가’ 녹음 이후 비슷한 캐릭터 역할을 많이 맡게 됐습니다. 게임의 인기와 관심도가 높은 만큼 저희에게도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엔픽셀(공동대표 배봉건, 정현호)의 신작 모바일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그랑사가’가 지난 26일 출시 후 약 하루 만에 구글 플레이 스토어 및 애플 앱스토어 등 양대마켓 인기 순위 1위를 기록, 다운로드 합계 역시 100만 건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유저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해당 게임의 캐릭터를 연기한 성우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특히 주연 캐릭터인 ‘라스’와 ‘세리아드’는 최근 인지도를 급속히 높이고 있는 김지율 성우와 송하림 성우는 각각 맡아 호연을 펼쳤다. 

‘그랑사가’ 녹음 이후 비슷한 배역의 캐릭터와 주연급 배역을 많이 맡게 됐다고 밝힌 이들은 녹음당시 에피소드와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김지율 성우와 송하림 성우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 입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엔픽셀 제공
김지율 성우와 송하림 성우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 입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엔픽셀 제공

◆연기 터닝포인트된 배역 
두 성우는 모두 ‘그랑사가’가 자신의 이력에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강조했다. 녹음 이후 업계에서 비슷한 캐릭터 배역을 여러 차례 제안받았을 뿐 아니라, 기존과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한 만큼 기억에 남은 셈이다.

송하림 성우는 “난생 처음 ASMR처럼 속삭이는 연기에 도전했다. 녹음 당시 다른 캐릭터들과 밸런스가 맞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가 맡은 ‘세리아드’는 기억을 잃어 수동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표현해야 했기에 속삭이는 발성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원방송을 시작으로 다양한 애니메이션 더빙에 참여했지만 ‘그랑사가’ 녹음작업은 그에게도 신선한 시도였다. 마이크에 정확한 음성을 집어넣어야 하는 성우 직무의 특성상 또렷한 소리와 발성이 중요한데 이러한 틀을 깨는 시도가 송하림 성우의 기억에 남은 것이다.

덕분에 송하림 성우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쿠키런:킹덤’의 ‘세인트릴리 쿠키’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엔픽셀 측에서 유튜브에 올린 샘플 중 소심한 여고생 연기를 보고 역할을 줬다”며 “‘그랑사가’ 이후 다른 녹음실에서 온 연락 중 ‘세리아드’와 같은 느낌의 연기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게임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김지율 성우는 “게임 녹음 전문 스튜디오인 아토믹 스튜디오의 연락을 받고 갔는데 ‘라스’의 설정 이미지를 받고 놀랐다”며 “‘라스’처럼 사연많고 기구한 팔자 주인공을 좋아했는데 남자 성우들이 하는 배역들은 괴물이나 조연급이 더 많은 편이기에 이번 배역이 기회라 생각하고 더 몰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니버스 출신 프리랜서 성우로서 다양한 더빙 작업에 참여했지만 이번처럼 게임 더빙작품의 주연을 맡은 게 처음이었다. 자신의 강점을 전형적인 주인공 연기로 꼽았던 만큼 ‘라스’ 역에 대한 애정을 표했으며 그에 걸맞게 연출의 지시를 확실히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녹음 현장 배려 감사
국내 게임 개발이 매우 긴박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더빙 작업도 이에 맞춰 일종의 쪽대본 녹음처럼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두 성우는 이와 관련해 엔픽셀 측에서 연출·지원 측면에서 기존과 다른 수준의 배려를 해준 점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송하림 성우는 “녹음 이후 비슷한 배역 제안도 많았고, 알아보는 분들도 많아졌다”며 “국내 더빙 작업환경의 즉흥성 때문에 유저들의 귀를 충족하지 못한 연기가 될까 걱정했지만 호평을 받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와 실제 결과물이 다른 것에 대해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만큼, 이번 ‘그랑사가’ 녹음 작업 중 엔픽셀의 지원으로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김지율 성우도 “게임 개발은 일정에 쫓기는 만큼, 대본이나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다”며 “엔픽셀에서는 녹음 때마다 연기자를 배려해줬고 특히 잘 정리된 대본 등 세세한 부분에서의 케어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게임,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광고, 라디오 드라마, 오디오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만큼 김지율 성우는 이러한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김지율 성우 사진=엔픽셀
김지율 성우 사진=엔픽셀

◆“성우, 녹록치 않지만 재미있어”
두 성우들은 녹음현장에서의 쪽대본 등 쉽지 않은 상황을 전하면서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OTT 시장 확대, 오디오북 시장 조성 등 방송환경의 변화로 성우들의 업무 범위가 더 늘어나리라 예측했다. 

김지율 성우는 “시장이 변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고 과거 외화, 방송에 국한됐던 직업 범위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라며 “1인 미디어 시장도 발전했고, 제대로 된 방송 화술을 구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이와 관련된 강의 수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성 더빙 관련 시장이 사양산업이라는 일각의 의견은 잘못됐으며 오히려 일이 늘어나 영화 현장 더빙 사례를 소개하며 새로운 분야로 도전 중인 사실도 공개했다. 최근에는 성우들이 영화의 후시 녹음 작업 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맞는 현장 녹음을 펼치고 직접 극 연기를 하는 등의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 음성 녹음서비스(TTS) 등에 대한 의견을 묻자 송하림 성우는 “TTS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라며 “결국 사람이 해야할 분야는 남을 수밖에 없고, 성우는 그러한 부분들을 챙긴다”고 말했다. 과거 보컬로이드 등장이 가요산업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큰 반향을 주지 못한 것과 같은 셈이다. 

송하림 성우 사진=엔픽셀 제공
송하림 성우 사진=엔픽셀 제공

◆“캐릭터가 더 기억되는 성우 되겠다”
김지율 성우와 송하림 성우는 ‘그랑사가’ 이후 유저들에게 각인되는 연기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성우를 넘어 캐릭터로서 기억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송하림 성우는 “원래 목표가 ‘캐릭터 자체로 기억되는 사람’”이라며 “어렸을 때 외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캐릭터가 말하는 줄 알았다. 당시 기억하던 신선함을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지율 성우는 “들을 때마다 신선한 성우가 되고 싶다”며 “연기를 할수록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고 오늘보다 나은 모습을 선보이고 싶은데 처음 성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 느낀 감정을 잊지 않고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송하림 성우는 1992년 생으로 2014년 대원방송 공채 성우로 선발된 뒤 2016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주요 배역으로는 유미라 (갓 오브 하이스쿨), 문지민 (슈퍼 시크릿), 세리아드 (그랑사가), 아펠리오스(알룬) (리그 오브 레전드), 델라린 서머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인트릴리 쿠키 (쿠키런: 킹덤), 오르피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이 있다.

김지율 성우는 1990년 생으로 2015년 CJ E&M 공채 성우로 뽑힌 뒤 2018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주요 배역으로는 박일표 (갓 오브 하이스쿨), 온녕 (마도조사), 에릭 (사이드킥), 불가살이 (신비아파트 : 고스트볼의 비밀), 라스 (그랑사가), 레인저(남), 위자드(남) (메이플스토리2), 매그너스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 반다르 스톰파이크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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