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윤 기자
천성윤 기자

[서울와이어 천성윤 기자] 자동차 급발진은 수십년째 논란인 미스터리이자 자동차 회사의 명운을 움켜잡는 첨예한 담론이다.

급발진은 모든 제어 장치가 먹통이 된 가운데 엔진 분당 회전수(RPM)가 마구 치솟으며 질주하는 현상을 뜻한다. 

논란이 워낙 오래 지속되온 탓에 이젠 급발진 현상 자체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거나 노인·여성 운전자 등을 거론하며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는 주장도 보인다. 제조사는 페달 블랙박스 설치·사고기록장치(EDR) 공개를 거부하며 현상을 밝히는데 매우 소극적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급발진 사건에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위해 ‘페달 블랙박스’의 설치를 제조사에 권고했으나 일제히 거부했다.

완성차업체는 페달 블랙박스 기술개발에 3~5년이 걸린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쳤고 국토부는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만약 긴 개발기간이 사실이어도 5년이 걸리던 10년이 걸리던 해야 할것은 해야 하는 법인데 왜 시도 조차 안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토부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제조사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급발진은 실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벌어진 토요타 급발진 사태다. 미국 법원이 토요타 차량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인정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의 리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이던 토요타는 12억달러에 육박하는 벌금을 내며 장기 침체를 겪었다. 일각에선 토요타가 이 사건으로 겁을 단단히 먹어 소프트웨어 중심인 전기차 투자가 늦었다고도 말한다. 

한국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 중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기억됀 급발진 사고가 2016년에 일어난 ‘부산 싼타페 급발진 일가족 사망 사건’이다. 이 사고로 운전자 한모씨를 제외한 그의 아내, 딸, 손자 두명이 사망했다. 

가족을 잃은 한모씨는 결국 차량 결함 입증을 하지 못하고 운전미숙으로 검찰에 기소 됐다. 황당한건 기소 결과가 ‘무혐의’였다. 운전미숙으로 사망사건이 발생했으나 과실은 없는,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급발진을 밝히는 최후의 수단은 제조물 책임법의 개정과 EDR 공개 의무화다. 미국은 급발진 원인을 소비자가 찾지 않는다. 미국 법원은 제조물 책임법의 입증 책임 전환(shifting the burden of proof)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증책임 전환이란 소송을 건 측이 피소송자의 잘못에 대한 근거를 입증해야 하는 소송법의 일반원칙에도 특별한 사건일 경우 예외적으로 소송을 건 사람이 아닌 상대방이 이를 입증하는것을 의미한다. 이 조항이 발동되면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한국에도 제조물 책임법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제조물 책임법 제3조의2(결함 등의 추정)에 따르면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제1호의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제1호의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경우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의한다.

문제는 현행법상 제조물 책임법이 작동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사용한 상태’(제1호)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제2호)에 속한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사용자가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 척 봐도 추상적인 해당 조건은 현실적으로 개인이 입증하기 어렵다. 

지난 6월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때 입증책임을 피해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음 논의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을 두고 급발진 건을 관할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실상 반대 의견인 ‘신중 검토 의견’을 전달하면서 개정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EDR의 공개 의무화도 발의가 시급하다. 미국에선 EDR을 공개하도록 법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내는 관련법이 없어 수사기관인 경찰, 국과수에 제출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EDR이 장착된 차량이라면 소비자가 기록을 열람할 수 있고 보험회사가 그 자리에서 10분 안에 데이터를 볼 수 있다.

반면 국내 완성차업체에 EDR 확인이 가능하냐고 물으면 EDR 데이터 열람은 커녕 EDR이 달린 차량인지도 영업 기밀이라 못 가르쳐 준다고 한다.

급발진 사고에서 제조사가 펼치는 주장은 단 하나,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착각했다”는 논리다. 그 어떤 소프트웨어 결함이나 차량 결함을 인정하지 않으며 법원도 이 논리에 손을 들어준다.  

1900만대의 차량이 도로를 누비는 현재의 한국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급발진 현상에 대한 소비자의 입증과 정부의 소극적 대처다.

제조사가 입증 책임을 지거나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것, EDR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안전한 차라는 가장 확실한 보장이다. 토요타는 급발진 인정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지만 품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혁신이란 게 다른 데 있지 않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파격적으로 급발진을 원천봉쇄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혁신이다. 또 이 길이 종국적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증명서와 같이 여겨저 제조사에 이익이 되는 행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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