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조원태 회장 등 가족들 선영서 추모식
“CEO는 오케스라 지휘자 역할 해야”…시스템 경영론 주창
대한항공 항공화물 운송 능력 키워…코로나19 위기 가장 먼저 극복
남매간 경영권 분쟁 마무리된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 체제로 재도약

지난 2011년 5월24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본사에서 열린 초대형 항공기 A380 1호기를 인수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종석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지난 2011년 5월24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본사에서 열린 초대형 항공기 A380 1호기를 인수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종석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최고경영자(CEO)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일우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생전에 남긴 자신의 경영철학이다. 부친 조중훈 창업회장이 “사업가가 아닌 ‘예술가’처럼, 사장이 아니라 ‘화가’처럼 노선도를 그렸다”고 한 것과 비교된다. 이는 “기업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춰 가꿔나가는 것”이라는 그의 지론에서 비롯된다.

한진그룹을 이끌며 조양호 회장은 ‘시스템 경영론’을 구축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시스템 경영의 기본은 직위여하를 불문하고 개인 한명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 회사 전체 차원에서 톱니바퀴가 맞닿아 돌듯 중단없이 흐름을 이어가야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인력과 보유자재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한진그룹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며,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업무가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탄탄한 기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디테일에 강한’ 경영자로 불리는 그는 경영과 관련한 전 과정을 꿰뚫어 보며 전문경영인과 임직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렇다고 카리스마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직원들이 혹시라도 긴장할까봐 한 발 뒤에서 조용히 관찰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개선할 사항을 지시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조양호 회장이 재직한 45년은 건국 이후 가장 역동적으로 경제와 사회가 비약적인 도약을 했던 시기다. 국가경제의 성장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간은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조양호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결국 이들 위기를 이겨내고 창립 50주년을 맞을 수 있었다.

그는 탁월한 선견지명의 혜안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때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이라크 전쟁, 사스(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양호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LCC 설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갔다. ‘항공업계의 국제연합(UN)’이라고 불리우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아왔다.

8일은 조양호 회장이 고니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간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그의 바람과 달리 한진그룹은 2년간 남매간 경영권 분쟁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번져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남매간 경영권 분쟁은 마무리 됐고, 장남 조원태 회장 중심으로 한진그룹이 재정비하고 있다. 오는 24일 회장 취임 2주년을 앞둔 조원태 회장은 대한항공이 KDB산업은행에 제출한 ‘인수합병 후 통합 전략(PMI)’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2년 안에 완전히 흡수, 하나의 ‘대한항공’으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

창업회장 시절부터 강점을 갖고 있던 항공화물 운송 역량 덕분에 대한항공은 전 세계 항공사들 가운데 비교적 가장 먼저 영업이익 흑자로 돌아섰다. 조원태 회장이 조부와 부친으로 물려받은 경영수완을 발휘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평생을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조양호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과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면서, “조원태 회장도 이러한 정신은 물려받되 자신의 독자적인 경영철학을 발휘해 새로운 성장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원태 회장과 가족은 이날 오후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소재 신갈 선영에서 조양호 회장 추모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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