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357.5원을 찍은 이후 13년 4개월만
‘매파’ 연준에 달러 강세… 당국 구두 개입 역부족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 김남규 기자] 29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1350원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4월 1357.5원을 찍은 후 13년 4개월 만이다. 종가 기준으로는 2002년 6월 19일(109.63) 이후 2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하면서 미 달러화로 자금이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환율 상승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의 발언으로 당분간 달러화 강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 중국 경기 둔화 등의 대외 악재로 주요국 통화 약세가 심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도 내놓고 있다.

◆파월 매파 발언에 환율 ‘고공행진’

서울 외환시장에서 29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9.1원 오른 1350.4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하루 만에 약 20원이 오른 것으로, 이날 기록한 최고가보다는 3.1원 낮은 수치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11.2원 오른 1342.5원에 개장해 12시 25분 1350.0원을 돌파했다. 12시 32분에는 1350.8원까지 치솟았다가 하락세로 돌아서서 현재 1340원 후반대에 거래 중이다. 

달러 강세는 매파 성향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통화 긴축 메시지가 주효했다. 앞서 파월 의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며 당분간 ‘제약적인 통화 정책 스탠스’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파월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7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전월보다 둔화된 것을 두고 “단 한 번의 (지표) 개선으로 물가상승률이 내려갔다고 확신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며 “(금리인상을) 멈추거나 쉬어갈 지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가 안정을 회복하려면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며 “지난 7월에 다음 회의에서도 또 다른 이례적인 큰 폭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이날 연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통제 중이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금리 인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로, 세계 경제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고려해 연준의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이 빗나간 것이다.

◆당국, 구두 발언에도 ‘속수무책’

문제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향후 추가로 인상될 예정이어서 원화 약세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달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이날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오전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시장에서 과도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 원·달러 환율이 1380원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유로화와 위안화의 추가 약세 흐름이 나타나면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두 차례에 불과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의 잭슨홀 발언을 통해 미 연준의 매파 기조가 확인되면서 당분간 달러 강세 기조를 꺾을 수 있는 이벤트가 부재한 상황”이라며 “반면 유로화의 추가 약세 흐름은 강화될 수 있어 달러화 가치의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유럽 내 천연가스 수급이 악화하면서 에너지 불안이 커지고 있다. 또한, 글로벌로 극심한 가뭄이 겹치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유로화와 달러화의 가치가 동일해지는 ‘패러티(parity)’마저 무너졌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시장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둔화된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환율 상단은 1370원으로 열어두고 있다”며 “다만 강달러에 중국과 유럽 악재가 중첩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원·달러 환율도 1400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러화 강세가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높은 물가수준으로 여러 경제지표들이 혼재하고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물가와 이에 따른 소비자기대지수 변화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노 BNK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달러 강세국면보다는 달러 약세국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달러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장기와 단기 금리차를 기준으로 추가적인 달러 강세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원/달러 환율 연저점은 1187원으로 이미 연간 157원 수준의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며 “2010년 이후 원/달러 환율의 연저점-연고점 괴리는 평균 132원인 점과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고려해 4분기 원/달러 환율 상단은 1380원 수준으로 제시. 4분기 평균은 1320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