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윤 기자
천성윤 기자

[서울와이어 천성윤 기자] 이공계 학생들 사이에 불어닥친 의대 열풍이 반도체 인재 양성의 길을 가로막았다. 최상위권 공과대학인 연세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올해 합격자의 92%가 등록하지 않았고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의 경우도 미등록자가 50%에 이른다.  

두 학과들은 반도체업체와의 ‘계약학과’로서 졸업 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취업이 보장된다고 봐도 된다. 계약학과는 기업과 대학이 손 잡고 특정 학과를 개설하는 것으로 졸업 후 해당 기업에 취업이 수월하다.

하지만 일류기업 입사 기회를 학생들은 마다한다. 미등록 학생들은 수도권·지방 의대로 이탈하거나 재수를 선택한다. 인재난에 시달리는 반도체업계 입장에선 암울한 현실이다.   

한국의 의대 열풍 배경은 쉽게 말해 ‘리턴’이 많기 때문이다. 절대로 뺏기지 않는 면허증, 사회적 인정, 사람을 살린다는 사명감과 경제적 안정까지, 고통스런 수련 과정 끝에 많은 것을 안겨다 준다.  

반면 반도체를 천직으로 여기라고 하기엔 학생들 입장에선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를 지켜보며 ‘회사’란 칼같은 정년과 냉정한 성과 위주의 삶을 살게 한다고 인식해왔다. 또 기업의 ‘원 오브 뎀’이 되는 것을 꺼리는 세태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반도체 고급 인재 양성은 필수적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대격변 과정에서 맞닥뜨릴 어려움을 깨부수는데 반도체에 진심을 다 하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에서 초격차 기술을 해내며 일본 반도체를 꺾어낸 제2의 권오현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와 정부가 힘을 보태 취업보장 이상의 강도높은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학금, 유학기회, 가족 지원책 등 군 사관학교의 장교 육성과 흡사하게 국가적 혜택을 제공해 학생이 많이 몰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반도체 인재는 국가 필수 인력으로 여기고 양성해야 한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유치가 될 약 1경원에 달하는 AI 반도체 투자금을 모집한다고 하고, 미국 정부는 인텔에 화끈하게 13조원을 쏴줄 예정이다. 일본도 TSMC를 자국내에 유치하고 수십조원을 마구 퍼부으며 반도체 강국으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반도체 학과 기피현상은 미래의 반도체 경쟁력에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일본이 과거 산학연계에 실패해 반도체 암흑기를 거쳤듯, 우리도 단 한세대라도 인재양성 공백이 생긴다면 암흑기가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