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위해 음악 포기한 아버지 권유로 음악계 입문
배낭여행중 들렀던 오스트리아에 빠져, 유학길 올라
작은 아버지 진윤일 박사 이어 KBS교향악단 단원 뽑혀
아내 주해정 원장의 든든한 지원 덕분, 음악가 생활 가능
사중주단 Avec 스트링 콰르텟 멤버 참여해 활동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지난해 1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처음 창궐한 이후, 자영업과 같은 사람과의 대면을 통해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직업군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예술계였는데 뮤지컬, 무용, 연극, 연주 공연 등은 준비 기간도 길거니와 무대장치, 인건비, 홍보 등 제작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제작비용 환수를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관중에게 객석 표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거리두기 2단계, 2.5단계, 3단계까지 올라가면서 예술계 종사자들은 단체로 모이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공개적으로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 되었고 무대는 없어져 갔다. 무관중 생중계 공연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을 통해 방영되었지만 홍보가 미흡한 나머지 ‘생중계’라는 단어가 무색할만큼 관람객은 적었으며 오히려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연주자에게 무대가 없어지는 것은 축구선수에게 그라운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는 KBS교향악단 수석 비올리스트인 진덕 교수와 함께 그가 비올리스트로서 걸어온 길,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도입되고 거리두기 규제가 완화되며 점차 활기를 띠고 있으나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공연장과 연주자에 대한 규제,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한 인터뷰를 나누어 보았다.

2019년 원오케스트라와 정명훈 지휘자(왼쪽)와 협연 후 진덕 교수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2019년 원오케스트라와 정명훈 지휘자(왼쪽)와 협연 후 진덕 교수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 ‘두발자유’라는 말에 선택한 예원학교 진학

진덕 교수는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가 그렇듯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입문했다. 그 배경엔 과거 음악을 배우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꿈을 이루고자 하셨고 진덕 교수는 음감 형성의 기초가 되는 피아노를 시작으로, 10살이 되어서는 당시 KBS교향악단의 비올라 단원이었던 작은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 지도를 받았다.

“‘예원에 진학하면 머리를 깎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을 전해 듣고 밤을 새워가며 연습하던 기억이 납니다. 참 단순하죠? (웃음)”

그렇게 그는 국내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엘리트 코스인 예원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진학까지 탄탄대로를 밟았다. 진덕 교수는 국군교향악단이 창단하기 전, 국립현충원 내 주둔한 국방부 군악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지금은 국군교향악단이 생기며 기악과 전공생들이 전공을 살리며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지만, 당시엔 현악 4중주에 필요한 극소수 인원만 선발했기에, 시기에 맞춰 빈자리가 나지 않으면 전공자가 입대하는 것도, 발탁되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하루 일과시간의 대부분을 개인연습에 쏟을 수 있었던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주말마다 외출이나 외박을 하여 개인지도를 받을 수도 있었어요. 예술체육요원 편입인정대회에서 수상을 못하면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음악인으로서 후배들이 최대한 군 면제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운동선수, 연예인, 바둑기사 등 다른 분야 직업군과의 형평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기에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합니다. (웃음)”

군악단에서 제대한 그는 이후 한예종 졸업 전 유학을 떠났다. 그의 나이 만 28살이었다.

유학시절 동료들과 함께 연주 연습을 하고 있는 진덕 교수(왼쪽).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사과정을 마친 진덕 교수는 비올라로 전공을 전향하여 독일 브레멘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유학시절 동료들과 함께 연주 연습을 하고 있는 진덕 교수(왼쪽).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사과정을 마친 진덕 교수는 비올라로 전공을 전향하여 독일 브레멘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 배낭여행의 추억 때문에 선택한 유학지

음악 전공자들은 본인이 배우고 싶은 교수님을 찾아, 학교를 찾아, 좋아하는 음악가의 자취를 찾아 유학지를 선택한다. 언어가 때론 큰 작용을 하기도 하는데 영어권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이 선택하는 유학지는 미국과 영국이다. 진덕 교수는 독일어권에 속하는 오스트리아를 택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를 시작으로 베토벤, 슈만, 브람스, 멘델스존, 바그너 등 많은 음악가의 고향인 독일은 세계 모든 음악가가 평생에 한 번쯤은 방문하는 ‘성지’로 통한다.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는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말러 등의 고향이다. 음악계를 통틀어 최고의 작곡가들이 탄생한 이 두 나라는 1년 내내 작은 마을부터 도시 전역에서 크고 작은 공연들이 펼쳐진다. 페스티벌 같은 축제도 자주 열린다. 그중 독일은 국내 기악 전공자들이 가장 첫 번째로 고려하는 유학지이며 가장 많은 국내 기악 전공 음악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잠시 들렀던 오스트리아가 참 좋았어요. 청개구리 근성이 있었는지 동료들이 다들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보며 저는 꼭 다른 곳으로 가고 싶더라고요.”

유학을 떠난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1585년 설립되어 두 번째로 역사가 깊은 대학이자 가장 큰 대학 중 하나인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학사과정을 수학하였다. 지도교수였던 안케 쉬텐헬름 (Anke Schittenhelm) 교수는 자세와 주법을 교정 중이었던 진덕 교수를 한 번도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려주며, 연주자 자신이 무대에 대한 확신이 들기까지 무대에 오를 것을 종용하지도 않는 ‘인내심’과 ‘인자함’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학기 마지막 단체 공연 등에서 모든 학생이 무대에 오를 때 한 학생이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뒤로 물러난다면 가르치는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건 쉬운 것이 아니다.

진덕 교수에겐 그라츠 국립음대에서의 시간이 각별한데, 이유는 ‘비올라’라는 악기를 처음 만났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바이올린 전공이었던 진덕 교수는 학사 마지막 학기에 모든 바이올린 전공생들이 한 학기는 비올라를 수업을 이수해야 했는데 이 수업이 계기가 되어 비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처럼 겨우 숙제만 해가는 수준이었어요. 한 번은 교수님께서 바흐 첼로 모음곡을 과제로 내주셨는데 그때 모든 것이 바뀌었지요. 그 곡이 너무 좋았거든요. 하루 10분 연습하던 비올라를 서너 시간씩 붙잡으며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비올라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독일 브레멘 국립음대 석사과정 재학 당시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브카 골라니와의 마스터 클래스. 사진=진덕 교수 제공
독일 브레멘 국립음대 석사과정 재학 당시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브카 골라니와의 마스터 클래스. 사진=진덕 교수 제공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 학사과정 졸업반 당시 진덕 교수는 독일의 브레멘 국립음대 석사과정에 지원하였다. 대담하게도 바이올린이 아닌 비올라로 전공을 바꾸어서. 서른이 다된 아들의 진로에 대해 불안감을 안겨 드리고 싶지 않아 부모님께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서 몰래 입시를 치렀다. 실기시험에서 본인의 악기가 없었기에 비올라 수업을 하기 위해 학교에서 빌렸던 중국제 악기로 남몰래 입시를 치렀다.

“제게는 어떻게 보면 도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 둘 유학을 마치고 다시 귀국하는데 저는 서른 살이 되어서 새로운 악기를 시작했으니까요. 마음에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냥 좋아서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좋으니 매일 행복했어요.”

진덕 교수가 브레멘 국립음대에서 만난 에스더 반 스트라렌 (Esther van Stralen) 지도교수는 그라츠 국립음대 시절 진덕 교수가 서지 못했던 무대에서 마음껏 설 기회를 주었다. 얼마나 크고, 작은 연주 기회를 ‘몰아’ 주었던지 2주에서 3주 안에 새로운 곡을 배우고, 익혀서, 청중 앞에서 연주해야 했다. 그러나 버거움, 힘듦보다는 즐거움이 훨씬 컸다. 유학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은 온다는 ‘슬럼프’. 진덕 교수는 어떤 경험을 했을까?

“유학하며 딱히 너무 힘들거나 슬럼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적은 많았지만, 그것은 무대에서 다 보상받았으니까요… 아! 삼시 세끼가 가장 힘들었어요. 음식 만드는 것을 너무 귀찮아해서 거의 거르고 지내는 데다가 식욕도 없는 편이라 하루 한 끼만 겨우 사서 먹고. 당시 몸무게가 50kg대 초반까지 떨어져서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2010년 네덜란드 ‘Peter the Great’ 페스티벌에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참가하였으며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하였고, 같은 년도 열린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북독일 비올리스트의 날’, 독일 ‘맥스 레거’ 포럼에 각각 초청되어 솔리스트로서 참가하였다. 2012년 출전한 이탈리아 비토리아 카파 리게띠(Vittoria Caffa Righetti)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했다. 브레멘 국립음대 오케스트라와 이탈리아 ‘유로 오케스트라 인 바리’ 등과 비올리스트로서 국제무대에서 연주 경험과 실력을 인정받고 2011년, 무사히 브레멘 국립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진덕 교수는 5년간의 유학 생활을 끝으로 귀국을 결심했다. 그는 유학 시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slow but steady’라고 답했다. 느리게 느껴질지라도 꾸준하고 진득하게 매달린다면 언젠가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 앞서 걸은 누군가의 발걸음

2011년 한국 귀국 후, 이듬해 미국의 한 대학의 Artistic Diploma(최고연주자과정)에 합격한 진덕 교수는 학교에서 원하는 언어점수 서류를 위해 토플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KBS교향악단에서 비올라 단원 채용 공고가 났을 때 마음 편히 볼 수 있었다. 2012년 부수석으로 입단하였지만, 그동안 KBS교향악단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올라 수석이 공석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가 수석 대행으로서 많은 연주회의 비올라 파트를 이끌었다. 그리고 진덕 교수는 공식 수석 연주자 채용 시험에 응시하여 2018년 12월 수석 연주자로 정식 합격 통보를 받았다.

“수석이라는 자리가 참 힘든 자리이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그 누구보다 수석 연주자가 빨리 채용되어서 제가 그 부담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6~7년 동안 치러진 여러 번의 수석 연주자 오디션에서 아무도 뽑히질 않는 거예요. 저도 교향악단 생활이 익숙해짐과 더불어 무엇인가 정체된다는 느낌이 있었고 동기부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채로 외부지원자들과 함께 수석 연주자 오디션에 도전하였습니다. 연간 100회에 달하는 KBS교향악단 연주 일정을 소화하면서 오디션을 준비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으나, 동료 단원분들의 배려로 끝까지 힘낼 수 있었습니다.”

KBS교향악단의 제8대 음악감독인 요엘 레비 지휘자와의 연주 당시. 2012년 KBS교향악단 부수석으로 입단한 진덕 교수는 그 사이 수석 대행으로 활동하다 2018년 수석 연주자로 전격 발탁 되었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KBS교향악단의 제8대 음악감독인 요엘 레비 지휘자와의 연주 당시. 2012년 KBS교향악단 부수석으로 입단한 진덕 교수는 그 사이 수석 대행으로 활동하다 2018년 수석 연주자로 전격 발탁 되었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앞서 진덕 교수는 ‘KBS교향악단 비올라 단원이었던 작은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라고 소개했다. 진덕 교수의 작은아버지는 진덕 교수와 똑같이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전공을 바꾸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KBS교향악단에 입단. 5년여간 비올라 단원으로 활동하다 학업을 위해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으로 떠나 연구과정, 아스페란투라과정 및 한국인 최초로 비올라 연주 박사학위를 취득한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진윤일 박사다. 집안에서 KBS교향악단의 비올라 단원이 연달아 발탁된 것이다. 여러모로 진윤일 박사는 진덕 교수가 걸어온 길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KBS교향악단 지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아버지께서 KBS교향악단 단원이셨기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덕이도 커서 KBS 들어가야지!’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가 뭔지도 모를 시절부터 ‘그냥 거기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지요. 새삼 잊고 살았지만 이렇게 설명해 드리며 떠올려보니 저는 참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수석 연주자로서 마음가짐은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진다. 수석·대행 연주자의 직분을 맡았던 초반엔 곡 중간중간 ‘비올라 솔로’가 있어 비올라 전체 파트 중에도 수석 연주자인 본인이 홀로 연주하여 청중과 연주자들 사이의 공연장 안을 한 명의 비올라 연주로 채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짜릿함을 느꼈다면, 요즘은 비올라 파트 전체 소리가 하나의 유닛이 되어 일체감이 느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앞뒤, 좌우 동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 타이밍을 맞추고 남과 섞일 수 있는 소리를 내려 노력하고… 넓게 보면 이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의 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돌발상황이 있을지 모르기에 어떤 연주든 매 순간 긴장해야 하기에 힘든 것이 수석 연주자이다. 쉬는 마디 세는 것부터 시시각각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지휘자의 박자, 카운트 등에 누구보다 빨리 반응하고 비올라 연주자 모두를 이끌어야 한다. 눈으로는 지휘봉을 보며 귀로는 다른 악기군의 소리를 쫓으며 비올라 파트를 맞춰가야 한다.

“특별히 비올라 솔로가 많은 연주의 경우 작은아버지께서 무대 리허설에 오셔서 들어주시고 조언도 해주시곤 합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해주시는 말씀은 ‘늘 겸손해라. 단원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 ’입니다.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하여 저희 섹션 동료들에게 미안한 적이 많습니다.”

KBS교향악단이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이다 보니 해외 유수의 연주자들과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진덕 교수가 KBS교향악단에서 연주하며 가장 좋은 점으로 지체없이 꼽는 것도 이점이다. 어릴 적 CD나 영상으로 접했고 ‘반인반신’으로 여겼던 우상이자 영웅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며 소리를 섞을 수 있다는 건 늘 신기하고 흥분된다.

“린 하렐, 길 샤함, 에블린 글래니, 미하일 플레트네프, 정명훈, 제임스 에네스, 슐로모 민츠… 정말 너무나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나서 다 소개하기엔 끝없을 것 같아요. (웃음)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KBS교향악단과 협연이 잡혀있다 불의의 부상으로 취소된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의 팬인데요. 다시 방문하기를 일명 ‘팬심’으로 기다립니다.”

비올리스트 진덕 교수의 한예종 동문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석중, 반선경, 첼리스트 윤여훈과 올해로 8년째 합을 맞추고 있는 실내악 그룹 'Avec 콰르텟.' 사진=Avec 콰르텟 제공
비올리스트 진덕 교수의 한예종 동문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석중, 반선경, 첼리스트 윤여훈과 올해로 8년째 합을 맞추고 있는 실내악 그룹 'Avec 콰르텟.' 사진=Avec 콰르텟 제공

◆ 최고의 원동력은 뒤에서 지지해주는 ‘No. 1 팬’인 아내

진덕 교수의 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 주해정 원장이다. 그녀는 예원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예고 수석 입학, 1학년 재학 중 한예종 음악원 영재 선발되어 한예종 기악과 수석 입학 및 수석 졸업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진덕 교수가 수학한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전문 연주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중, 고, 대학교 2년 후배로서 서로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온 선·후배이자, 동료이며,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주해정 원장은 세계일보 콩쿠르 최연소 전체 대상, 성정 음악 콩쿠르 대상, 예원학교 음악 대상, 예원을 빛낸 상, 서울예고 실내악 콩쿠르 대상, 이화·경향 콩쿠르, 부산 음악 콩쿠르 등에서 1위를 비롯해 수많은 대회에서 입상 받으며 연주 실력을 인정받았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예종 오케스트라, Joy of strings 악장으로서 리더쉽을 겸비한 것은 물론, 서울시향 (2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원학교 오케스트라, 한예종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을 하며 솔리스트로서의 훌륭한 능력을 겸비한 재원이며 현재는 연주 활동을 잠시 멈추고 서울 소재의 ‘마이스트링 아카데미’ 원장으로서 지도자의 역량을 펼치고 있다.

“전공이 같다 보니 아무래도 제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많이 해주는데 제 최고의 팬이에요. ‘그걸 음정이라고 내냐’, ‘나쁘진 않은데 전혀 특별함이 없다’, ‘음악적 아이디어가 그리도 없냐’ 같은 소위 ‘팩폭’ (진실을 들이대 제압)을 일상다반사로 하니 최고의 안티 팬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웃음) 차오르는 분노는 연습으로 승화시키는 편입니다.”

매년 여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열리는 ‘Peter the Great’ 페스티벌은 북부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실내악 음악 축제이자 국제 아카데미이다. 약 10일 내외의 기간 동안 매일 다른 음악가들의 콘서트가 연리고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이 네 악기 전공자로서 세계 각국에서 발탁되어 축제에 초대된 학생은 개인지도, 실내악 연주, 마스터 클래스 등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진덕 교수는 2010년 여름, 이 ‘Peter the Great’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의 연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축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를 하게 된 그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한국에 있는 아내, 주해정 원장에게 전화하였다. 한국은 새벽 시간이었지만 그는 너무 간절했다.

“연주 안 하고 지금 도망가고 싶다고 했어요. 아내는 ‘기왕 도망칠 거면 연주하고 도망치라’라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크게 연주를 망치지 않아 이렇게 계속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네요.”

그 당시 주해정 원장이 바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술가는 함께하는 반려자를 예술가로서 ‘정신적 지주’이자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함께 보내왔던 시간만큼, 지금 보내는 시간 만큼,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는 만큼, 소소하면서도 세세한 것까지. 삶의 변화, 주변의 인물에 따라 연주는 영향을 끼친다. 삶과 영혼을 연주에 투영하여 감성을 실어나르는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는 굉장히 중요하며 소중하다. 진덕 교수와 주해정 원장이 비올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로 사는 서로의 삶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건 보이지 않지만 오랜 시간 돌탑처럼 높이 쌓아온 서로의 신뢰가 있고, 끈기 있게 지지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진덕 교수의 'No.1' 팬이자 삶의 원동력인 아내, 주해정 바이올리니스트(오른쪽).. 그녀는 진덕 교수의 아내이자 동시에 예원학교-서울예고-한예종-그라츠 국립음대까지 함께 진학해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온 선·후배이자, 동료이며, 가장 친한 친구이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진덕 교수의 'No.1' 팬이자 삶의 원동력인 아내, 주해정 바이올리니스트(오른쪽).. 그녀는 진덕 교수의 아내이자 동시에 예원학교-서울예고-한예종-그라츠 국립음대까지 함께 진학해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온 선·후배이자, 동료이며, 가장 친한 친구이다. 사진=진덕 교수 제공

◆ 코로나19가 바꾼 일상들

KBS교향악단 단원의 하루 일정은 오전 10시~오후 1시, 오후 2시~5시까지 하루 2번씩 연습(리허설)이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정기연주회’를 앞두고는 3일. 상대적으로 가벼운 일반 연주는 2일의 리허설을 한다. 그러나 지휘자의 요구나 곡의 난이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탄력적으로 연습이 이뤄지기도 한다. 평균 연간 100회에 달하는 공연을 하므로 늘 리허설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거리두기 규제 이후 공연은 줄줄이 취소, 혹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 당시엔 코로나 사태가 한두 달이면 지나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제가 정말 연주해보고 싶었던 곡들, 함께 연주해보고 싶었던 음악가들과의 협연 등도 있었는데 그런 크고 작은 연주들도 취소되고, 가득 찼던 객석이 텅 빈 무관중으로 바뀌고… 연주자에게 무대가 없어진다는 것은 축구선수에게 그라운드가 없어진다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다시 마스크 없이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필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현 기준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는 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이다. 공연장에서는 좌석 한 칸 띄우기 또는 동반자 외 좌석 한 칸 띄워서 앉으면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 오케스트라 같은 대규모의 인원이 모인 공연인 경우엔 연주자 모든 인원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실내악 공연의 경우엔 마스크 미착용이 허용된다. 이미 KBS교향악단은 5월에 예정된 정기연주회만 2회로 이제 제자리를 서서히 잡아가고 있으며 진덕 교수도 현재 소속인 실내악 그룹의 활동을 재개했다.

Avec 스트링 콰르텟은 바이올린 이석중, 반선경, 비올라 진덕, 첼로 윤여훈으로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사중주단이다. 이들은 2013년 모교인 한예종 동문음악회에서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하여 결성되었다. Avec 콰르텟은 우선 3개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첫 번째로 6월 16일 세종챔버홀에서 진윤일 박사가 이끄는 APS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와 블로흐의 작품을 협연한다. 7월 4일에는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7번째 정기연주회를 한다. 예원학교 1년 선배인 채재일 클라리네티스트와 함께 브람스 만년의 작품인 ‘클라리넷 오중주’(B단조, Op. 115)를 연주한다. 7월 16일에는 Avec 콰르텟 구성원이자 KBS교향악단 동료인 바이올리니스트 반선경(제1바이올린 수석), 첼리스트 윤여훈(첼로 부수석)과 함께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7월 16일의 연주는 KBS교향악단 실내악 시리즈의 일환으로 늘 연주하고 싶었던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현악 삼중주 버전으로 선보입니다. 부담되는 만큼 기대도 큰 공연이에요.”

Avec 콰르텟은 오는 7월 16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구성원 중 KBS교향악단 단원 세 명인 반선경(제1바이올린 수석), 진덕(비올라 수석), 윤여훈(첼로 부수석)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현악 3중주 버전으로 선보인다. 포스터=KBS교향악단 제공
Avec 콰르텟은 오는 7월 16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구성원 중 KBS교향악단 단원 세 명인 반선경(제1바이올린 수석), 진덕(비올라 수석), 윤여훈(첼로 부수석)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현악 3중주 버전으로 선보인다. 포스터=KBS교향악단 제공

그는 KBS교향악단 활동 외 실내악 연주에 상당 부분의 비중을 두고 있는데 실내악의 매력이 그만큼 넘치기 때문이다. 실내악은 ‘균형’과의 싸움이다. 예를 들어 Avec 콰르텟의 경우 네 명이 동시에 주선율(主旋律)일 수는 없다. 누군가는 ‘주(主)’가 된다면 나머지는 순간 ‘부(部)’가 되는 것이다. 매 순간 유기적으로 역할이 바뀐다. 서로를 존중하며, 경청하고, 맞춰주다가 본인이 ‘주’가 되는 차례가 오면 치고 나가야 한다. 그 전환이 어렵지만, 또 즐겁다. 대부분의 경우, 비올라 특유의 비음 섞인 중저음의 음역이 작곡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선율을 소화하는데 적합하다. 그런 이유로 ‘비올라’라는 악기는 실내악에서 많은 작곡가에게 사랑받는다. 진덕 교수는 7월 28일, 금호연세홀에서 그의 두 번째 독주회 개최를 끝으로 2021년 7월 상반기 연주를 마무리한다. 그는 이번 독주회를 위해 슈만, 파가니니의 작품과 더불어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작품인 비올라 소나타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연주가 있어서 벌써 걱정이지만 할 수 있는 건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는 것뿐.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 음의 의미를 다 이해하고 연주할 수는 없겠지만 한음 한음 연습하다 보면 안개가 걷히고 점점 실체를 드러내리라 생각합니다. T.S. 엘리엇이 그랬던가요? ‘진정한 시는 이해되기 전에 전달할 수가 있다’라고요…”

◆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현재 진덕 교수는 숙명여대와 모교인 한예종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한국 클래식 음악 시스템과 대학 커리큘럼 내에서는 좋은 교육자가 되기가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그에게도 큰 숙제이다. 고상한 교육자로 남기에는 기악과 전공의 학생들이 너무 많은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매 학기 치루는 실기시험, 셀 수 없이 많은 국내·외 콩쿠르, 향상 혹은 위클리 연주회, 피를 말리는 입시, 유학준비, 취업 오디션 등등.

“스승과 제자는 한팀을 이뤄 앞에 주어진 과제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결과는 수치화되거나 O·X로 나옵니다. 이것들은 아주 명쾌하고 냉정합니다. 한두 번 삐끗하면 이 팀은 깨지게 돼요. 저의 경우가 그랬고, 제 주위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은 참 아름답지만 만들어지기까지 잔혹한 면이 있지요. ‘좋은 교육자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이상적인 모범답안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한 저로서는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아름답게 가져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말이 진실한 대답인 것 같아요.”

학생들은 저마다 다양한 연주곡들을 공부하게 된다. 특히나 솔로 연주곡이 다양하지 않은 비올라의 경우엔 현시대의 작곡가들이 꾸준하게 초연을 하기도 하고, 다른 악기의 곡을 전조하여 연주하기도 한다. 진덕 교수의 특별한 신조는 ‘연주해보지 않은 곡은 가르치지 않는다’이다. 그는 수업 전 미리 악보를 구매하여 음원을 들어보고 운지법(fingering)을 만들고 반주도 맞춰본다.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고, 숨어있는 어려움이 늘 있기 때문이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고사성어는 연주를 지도하는 모습에서 참 어울리는 고사성어다. 어떠한 까다로운 악절에서 수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시범으로 제자는 스승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고쳐나간다.

“가끔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접해보고 익힌 곡들을 제 독주회에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웃음) 제가 가장 좋아하면서 독자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비올라만을 위한 독주곡은 독일의 작곡가인 막스 브루흐의 <Romanze>(로만체) Op. 85 입니다. 제가 비올라를 시작하기 전부터 좋아하던 곡이에요. 특히 운전 중에 들으면 세상이 엄청 아름답게 보이는 필터 효과를 경험하실 거예요. 꼭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앙상블 우리'와 협연 (사진=진덕)
'앙상블 우리'와 협연 (사진=진덕)

진덕 교수는 서른이 넘어서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전공을 전환했다. 지금도 수많은 기악과 학생 중 연관 있는 전공 악기로 전환을 고민하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비올라가 바이올린에 비교해 크니 손가락과 팔이 길면 유리하나 몸은 작지만 정말 훌륭한 비올리스트도 많다. 두 악기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톤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바이올린은 워낙 순발력이 좋은 악기이기 때문에 활이 줄에 스치기만 해도 괜찮은 소리가 나오는 반면 비올라는 그렇지가 않다. 반응 속도도 바이올린과 비교하면 매우 느리며 소리 하나하나 깊이 닿아야 한다.

“스포츠카와 SUV의 차이라고 비유하면 될 것 같아요. 둔하고 느리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어요. 어떤 악기든 일정 수준 이상의 고음을 내게 되면 다듬기 위해서는 특유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피아노, 성악, 관악기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어떤 상황이 와도 늘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건 모든 연주자의 고민이자 숙명일 테니까요.”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다니니, 과르넬리를 비롯한 세계적인 악기 명장들에게서 만들어진, 소위 ‘명기’로 꼽히는 고악기 중 비올라의 개수도 적기에 희소성이 높아 가격도 고공으로 치솟을 듯 높지만, 악기 크기도 현시대에 쓰이기는 다소 작은 경우가 많다. 평균적으로 성인 연주자들은 16~16.5인치 크기의 악기를 사용하는데 고악기의 경우엔 15~16인치 크기가 대부분이다. 진덕 교수가 현재 사용하는 악기는 16.5인치 크기의 비올라로 1900년경 영국의 허드슨이라는 악기장인이 만들었다.

“제가 사용하는 악기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균형이 잘 잡혀있는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서른 살이었던 그때 저는 제 미래를 두고 동전을 던졌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제 직업이라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특히 ‘비올라’라는 악기는 때때로 진덕 교수를 가장 긴장시키거나 궁지로 몰아세우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긴장을 이겨내고 극복하면 그가 쏟아부은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 아니, 보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감히’ 악기를 정복하겠다는 야심보다는 되도록 오랜 시간 악기 옆에 머물며 더 배우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음악 생활을 이어나가다 보니 여러 가지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오케스트라의 단원, 실내악단의 구성원, 독주자, 그리고 누군가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누구보다 ‘성실’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또 도전할 ‘목표’를 찾아서 늘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꾸준히 도입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전역의 인구가 접종받아 가까울 시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된다면 우리는 일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새로운 문화가 우리의 삶에 장착되고, 작곡가의 신곡은 매일 발표 되고 있으며,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시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예술가는 평생을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도전하고 공부할 자세로 살아야 한다. 진덕 교수가 말하는 ‘성실함’이 삶에 탑재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삶에서 동기부여가 확실한 목표를 찾아가고, 성실함으로 무장한, 비올리스트 진덕 교수의 무궁무진할 활약을 기대하는 바이다.

인터뷰/글: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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