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조선영업 (바)
수천억 비용 소요, 선주‧조선사 현금흐름 맞춰 결정
선주의 바잉 파워 커지면서 헤비테일 방식이 대세
선박금융 R/G 필수지만, 금융위기 이후 발급 어려워
선박 대여는 신조 부담 낮추는 상생 방안으로 주목

2020년 10월 5일 부산 소재 대선조선 조선소에서 열린 동진상선 1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 취항식에서 양사 관계자들이 선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선조선 제공
2020년 10월 5일 부산 소재 대선조선 조선소에서 열린 동진상선 1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 취항식에서 양사 관계자들이 선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선조선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선박 건조 비용, 즉 선가는 척 당 수백~수천억 원대이며, 일부 선박은 1조원을 넘는다.

따라서 선가를 지불하는 방법은 선주나 조선소 모두에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원가 계산에 반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현금 흐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선가를 한 번에 지불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건조 기간에 맞춰 현금을 나눠서 지불하는 방법과 선박수출금융, 선박 대여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인도시 대금 대부분 지급하는 ‘헤비테일’ 방식 선호

현금 지불은 보통 5회 균등분할 지불 방법이 가장 흔히 쓰인다. 자동차를 할부로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단, 자동차는 물건을 받고 일정기간 차 값을 나눠 내는데 반해 선박은 물건을 받기 전 즉 만드는 기간 동안 나눠서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선박은 고객이 먼저 주문을 해 만들어 파는 것이기 때문에 건조 비용을 미리 받는데 이를 ‘선수금(先收金)’이라 부른다.

가장 이상적인 현금 지불방법은 선주는 조선사와 계약서에 서명한 시점, 6개월 후 또는 강재 절단을 시작한 시점, 용골거치 시점, 진수 시점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장 공사를 마치고 시운전으로 선박 성능이 입증되어 선주에 인도하는 시점으로 나누어 각각 잔여 20%를 균등 분할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상황일 때만 그렇고, 돈을 지급받는 비율은 선주측의 요구에 따라 매번 다르다. 전체 대금을 어느 시기에 받느냐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 인도시에 50% 이상을 받는 결제 방식은 ‘꼬리(뒷쪽)가 무겁다’는 뜻으로 ‘헤비 테일(Heavy Tail)’ 방식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선주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헤비 테일방식은 통상 ▲계약할 때 먼저 20% ▲6개월 후에 10% ▲최초 철판을 자르는 착공식 때 10% ▲최초 블록을 도크에 거치하는 기공식, 즉 용골거치(Keel Laying)때 10% ▲건조된 선박을 인도할 때 나머지 50%를 받는 방식을 많이 쓴다.

매우 드문 경우로 계약 시점에 50% 이상의 선수금을 받는 ‘탑 헤비(Top Heavy)’ 방식도 있다. 조선소의 경우 선수금을 활용할 수 있는 탑 헤비 방식이 좋겠지만 선주사로서는 초기 금융 부담이 크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방식을 이용할 리 없다.

선주가 자금력이 있고 조선소의 자금 사정이 어려울 때는 조선소가 선가의 많은 부분을 우선 지급받는 것을 전제로 선주에게 높은 이자 이상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선가를 낮춰준다. 반대로 선주의 자금 흐름이 인도 시점에 많은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에는 조선소는 선박의 원가 계산에 해당 기간 소요자금의 금리를 포함시키기도 하며 선주에게 계약 이행 보증(Performance Guarantee)을 요구하기도 한다.

조선소는 한 척의 배를 건조할 때마다 그 과정으로 방송 카메라 또는 일반 카메라로 촬영한 후 이를 기록 영화로 만들어 인도식 때 선주사에게 선물로 증정하곤 한다. 이 때 건조과정을 촬영하는 이유는 선물용으로 뿐만 아니라 각 단계별로 대금을 결제할 때 배를 이렇게 만들고 있다는 보고용으로 제출하기 위해서 이뤄진다.

◆달러 결제 원칙, 환율에 영향 커

선가는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화 결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는 국내 선주사와 조선소간 거래도 마찬가지다.

조선소는 수주 물량이 쇄도해도 수주 잔량을 3년 반 또는 4년 치까지만 유지한다. 이 정도 기간이 환율 변동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최대치로 보기 때문이다. 달러는 2000년대 들어 환율 변동이 커지고 있어 환 피해도 커지고 있다. 달러 가득율이 높은 조선사는 선사로부터 수취한 달러를 헤지 등의 방법을 사용해 피해를 줄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환 시장은 조선소들이 달러 운용을 어떻게 하는 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선박수출금융 통해 자금 확보하기도

선주들도 거액의 선박의 건조를 의뢰하기 위해 ‘선박수출금융(Deferred payment, 연불금융)’을 활용한다. 각 국가들이 수출 촉진을 위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다. 선박수출금융은 선사가 자기 자금만으로 선박 건조가 어려울 경우, 선박을 담보로 하여 받는 장기융자다. 다만 배를 인도하기 전에는 배의 소유권이 조선소에 있어 선주는 선박수출금융을 위해 그 배를 담보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선박수출금융은 조선소가 선수금을 받기 위해 보증 은행으로부터 발급받아 선주에게 ‘선수금환급보증서’(R/G, Refund Guarantee)를 제공한다. R/G는 선수금을 받은 조선소가 파산 등의 이유로 계약을 불이행할 경우 은행이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는 보증서로, 이 보증서를 받은 선주는 조선소로부터 환급받을 권리를 담보로 대출은행에 제공해 선주가 선박수출금융을 받을 수 있다.

배를 인도하면 선주가 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배를 담보로 할 뿐만 아니라 배를 직접 운영해 발생하는 운영 수입 또는 제3자에게 배를 빌려줘서 받을 수입에 대한 권리 등을 담보로 선박수출금융을 받는다.

◆1000억 원 선박 R/G 수수료 2억 원

선박수출금융은 공적수출신용기관인 ECA(Export Credit Agency) 및 국제적인 상업은행이 주도하에 취급되고 있다. 한국의 ECA로는 수출입은행과 수출보험공사가 있다. 선주의 신용등급에 따라 다르나 보통 2~3년의 거치 기간, 그 후 6~12년의 상환 기간을 정하고 이자는 세계 금융시장의 추이에 맞춰 결정한다. 보통 원금과 이자를 합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 연 2회 원리금 총액을 균등 분할하여 상환토록 한다. 국제 금리가 높을 경우 정책금융에 대한 수요가 높으나 시장금융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는 정책금융을 채택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일본이 제공한 금융 조건이 세계 조선 경기 변화를 이끌어낸 일이 있으며, 중국의 공격적 금융 지원은 세계 선박시장을 왜곡시키기도 했다.

금융기관들은 조선사에 R/G를 발급할 때 통상 배값의 50%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은행은 이 보증금액의 0.3~0.4%를 수수료로 뗀다. 1000억 원짜리 배 한 척의 보증금액이 500억 원이라면 수수료만도 1억5000만~2억원이 되는 셈이다.

연평균 국내 한국 조선소가 인도하는 선박이 300~400여척에 달한다고 하니, 2000년대 들어 10년에 가까운 조선업 호황 속에 금융기관들이 선박금융을 통해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렸을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후 각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발급하던 R/G를 모두 대형 조선소에게만 발급해 문제가 발생했다. 중소 조선사들의 경우 선주들로부터 거액의 선박을 수주하고도 R/G를 발급받지 못해 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했다.

◆선박 대여, ‘선주‧조선사‧제품 제조업체’ 상생 모델

선박대여는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와 선박이 필요한 선주, 그리고 자재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산업체 사이를 연계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자금력이 없는 영세한 수산업자가 조선소에 새우잡이 어선을 주문하였을 경우 조선소는 젓갈 가공업자와 연계시켜 신조 어선의 소유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선박을 수산업자에 용선하여 준다. 그리고 용선기간 중에 어획물을 젓갈 가공업자에게 공급토록 하여 선가를 상계 처리하고, 상계 완료 후에 선박 소유권을 선주에게 귀속시키는 방법이 서해안 지역에서 쓰인 바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이 조선소와 해운업자 그리고 철강업체나 정유공장과 같이 지속적으로 원자재를 공급받아야 하는 업체 사이에도 성립되며 금융 산업과도 연계가 가능하다.

(자료: ‘조선기술’, 대한조선학회,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대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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