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흥업사를 통해 ‘아마스크림’을 판매했던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자는 1946년 부산 서대신동 사옥에 시설을 설치하고 화장크림 생산에 성공했다. 상업에서 제조업 기업인으로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제조에 성공한 뒤 연암과 동생 구정회, 허만정 공의 아들이자 아우 구철회의 맏사위로 연암 밑에서 사업을 배우기 위해 온 허준구, 크림 전문가인 김준환은 직접 만든 화장크림에 어떤 이름을 달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구정회가 의견을 냈다, “기왕에 모델로 서양 여배우를 쓰기로 했으니 상표도 영어에서 따 붙입시다. 원래 상호나 상표라 카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르기 좋고, 뜻이 좋고, 인상적인 거라야 되는 깁니다. 간결하고 산뜻하고 의미도 좋고, 그런 면에서 ‘럭키’라 카면 어떻겠습니까.”

“행운이라는 말뜻이니 의미도 좋고, 우리말로 쓸 때는 한자로 즐거울 락(樂), 기쁠 희(喜), ‘樂喜’라고 쓰면 제대로 맞아 들어가는가 싶습니다.”

한동안의 생각 끝에 연암은 그걸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럭키크림’이 판매가 날로 증가하자 연암은 시장 수요와 영업 섭외를 감당하고 능률적인 관리를 위해 조직을 구성해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가 된 1947년 1월 5일, 락희화학공업사를 창립했다.

6·25동란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플라스틱 공장을 건설했다. 깨지지 않는 럭키크림 뚜껑을 만들기 위해 소재를 알아보다가 접한 플라스틱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도구까지 간단히 만들 수 있었다. 심사숙고 끝에 연암은 플라스틱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전쟁 중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다 털어 넣어야 했다.

우려하는 동생과 자식들에게 연암은 “나는 결심했다. 이런 사업이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사업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의 생활필수품은 절대 부족한 실정이 아닌가 말이다. 생산업자가 국민의 생활용품을 차질 없게 만들어 내는 일도 애국하는 길이고 전쟁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인 기라. 그리고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남들이 비처 생각하지 못하고 손대지 못하는 사업을 착수해서 성공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생각해 봐라. 그래 나는 이 플라스틱 사업에 뛰어들 결심이다. 늬들 생각은 어떻노?” 부산시 부전동으로 이전한 공장에서 락희화학은 국내 최초로 합성수지 성형제품 생산을 개시했다.

연암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에 나오는 한 대목을 정리한 것이다. 연암은 락희화학을 통해 국내기업들 가운데 최초로 전자산업에 뛰어들어 금성사를 설립했고, 정유 사업을 포함한 석유화학산업에도 진출했다. 연암이 별세한 후 회사는 1974년 (주)럭키, 2005년 LG화학으로 사명을 바꾸었고, 이후 지주사 전환과 사업부문 분할 등을 단행했다. 변화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LG그룹의 신수종 사업은 거의 대부분 LG화학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석유화학 업체로 분류되어 있지만 LG화학은 ICT(정보통신기술), 디스플레이, 전기차, 바이오, 등 LG화학의 사업 범위는 한계를 구분 짓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LG화학은 LG그룹 신수종 사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LG그룹의 도전정신과 기업가 정신은 LG화학에서 수렴·발산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주 LG화학이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을 인적분할 하여 12월 1일 ‘LG에너지솔루션’(가칭)을 출범시킨다고 발표하자, 배터리를 보고 LG화학 주식을 매입했던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져 나오며 주가도 떨어졌다.

투자자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기자를 비롯한 산업 부문을 담당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큐베이터는 맨바닥에서부터 신수종 사업을 독자적 발전을 할 수 있게 되면 놓아주어야(독립시켜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신수종 사업을 키울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떼어냈다고 해서 실망하기보다, LG화학이 다음에는 어떤 분야를 점찍어 두고 대업을 도모할지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보는 게 낫지 않을까?

전기차 배터리는 구본무 선대회장의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LG화학이 다음에 추진할 신사업아이템은 구광모 현 회장의 의중이 실린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눈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이를 배경으로 LG화학의 향후 전개 방향을 관찰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유지·발전시킨다면, 회사 가치는 또 한 번 도약할 것이 분명하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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