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고정빈 기자] “나중에는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가 최근 건설업계 인력난을 우려하며 내뱉은 말이다. 모든 산업현장에서 안전은 최우선 가치로 평가된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의 잇따른 사고로 이미지가 추락한 건설업계는 안전에 더욱 예민하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예방하기 위해 안전관리자의 배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안전관리자 수급여건이 악화되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진다. 특히 대형 건설사에 비해 여유가 없는 중견·중소건설사의 상황이 심각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중견·중소 건설기업 303개사를 대상으로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 수급 여건’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71.6%, 중견기업 76.2%가 ‘안전관리자 수급 여건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아울러 최근 1년간 계약기간 이내 안전관리자가 이직·퇴직한 경우가 있다고 응답한 기업도 39.7%에 달했다.
이처럼 안전관리자가 점점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올 1월부터 시행된 해당 법안에 따르면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중대재해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인력으로 평가되는 안전관리자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현장 안전 강화를 위해 도입한 목적과 달리 많은 안전관리자들이 강력한 처벌이 두려워 직업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초래한 셈이다. 이에 안전관리자 인력은 줄었고 이들의 몸값은 자연스럽게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형건설사들은 안전관리자 연봉을 대폭 인상해주거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해 채용에 나서는 상황이다. 반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중견·중소건설사들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쉽지 않다.
앞으로 안전관리자를 배치해야 하는 건설사들은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하면서 2023년에는 공사기준 금액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에 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요구하는 몸값은 점점 오르고 인력은 부족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어두운 미래가 닥칠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때다. 대형건설사는 물론 여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건설사의 상황을 고려해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중대재해법을 폐지하거나 안전을 소홀히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설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어처구니 없는 요구가 아닌 절실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건설업계의 타격은 부동산시장으로 번진다. 공급이 막히거나 분양가가 급등하는 등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다.
완벽한 법안은 없다. 하지만 초기에 발생한 부작용을 해결해 악순환의 고리를 미리 끊을 수 있다. 업계의 우려를 간과해선 안된다. 반드시 조속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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