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호 기자
정현호 기자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각국의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배터리산업에선 적과 아군의 피아식별 구분이 어려워졌다.

앞서 완성차, 배터리 기업 간 활발히 이뤄지던 합종연횡으로 공고히 유지되던 파트너십에 점차 균열이 생기는 일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SK온과 포드의 불편한 동거다.

두 회사는 각각 국내와 미국 배터리·완성차 업계를 대표한다. 기존 포드와 SK온은 북미시장 공략에 손을 맞잡았다. 이들은 조지아 단독공장뿐 아니라 합작법인 ‘블로오벌SK’를 통해 켄터키·테네시주에도 공장 3기를 추가로 짓는 데 뜻을 함께했다.

양측의 밀월 관계가 무르익어 가는 시점, 분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관계가 다시 재조명된 것은 튀르키예 합작법인 계획이 전면 무산되면서다. 포드는 지난달 SK온과 함께 하기로 한 튀르키예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 과정에서 포드는 SK온을 자극했다. 새로운 파트너사와 기존 계획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에 공을 들이는 SK온 입장에서 자존심을 구긴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객사 신뢰도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 내부적으로 수율 문제로 골몰 중인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의 이미지 타격을 우려한다. 포드의 SK온을 향한 저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내 업계의 최대 경쟁자로 꼽히는 중국 CATL과는 미국 합장공장 설립 추진을, 튀르키예 프로젝트와 관련해선 LG에너지솔루션에 잇따라 손을 내밀었다. 최근 포드는 다시 한번 SK온을 직겨냥했다.

실제 이 회사는 자사 픽업트럭 모델인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을 일시 중단한 이유에 대해 배터리 화재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SK온 측에선 일회성 이슈라고 일축했으나, 포드는 관련 문제를 지속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 

자체적으로는 이미 ‘헤어질 결심’을 내렸을 수 있다. 배터리와 완성차업계 사이 굳건한 파트너십은 언젠가 끝날 관계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완성차 기업들은 배터리 자체 기술력 확보에 목숨을 걸었다.

특히 중요시하는 부분은 내재화. 합작사는 완성차업계에 중간 다리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도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리비안 등 글로벌시장에서 전기차 분야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호시탐탐 국내 배터리 3사의 기술력을 노린다. 

이미 배터리 합작사에 과도한 기술공유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전기차용 배터리산업에서 기술 유출은 곧 생존과 직결된다. 완성차 업체는 이를 바탕으로 배터리 내재화 시간을 단축해 한국 배터리가 지닌 경쟁력을 악화시킬 게 볼보 듯 뻔하다.

과거 반도체업계에서 삼성과 소니 등의 사례가 증명하듯 산업 변화에 있어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 동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한·중·일 기업들의 협력도 빈번했다. 어제의 동지가 다음날 곧장 적으로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달라지는 시장 분위기에 국내 배터리 3사도 익숙해져야 한다. 시장 경쟁에서 공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새로운 카드, 기술력 강화는 물론 변화에 한 발 앞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