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팹리스시장서 한국 비중 1% 불과
정부 올해 반도체산업 전반에 47조원 지원
국가주도사업인 반도체 치우친 성장 막아야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혹한기를 보내고 있다. 정보기술(IT)제품 전반의 수요 감소가 반도체 가격을 떨어뜨렸고, 지난해 4분기 이후 실적 하락폭이 가팔라졌다. 업계는 올해 하반기에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도체시장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국내기업의 생존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내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 생산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기업들의 성장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픽사베이
국내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 생산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기업들의 성장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픽사베이

[서울와이어 한동현 기자] 반도체설계(팹리스)분야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대표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최근 위탁생산(파운드리)에 관심을 보이면서 팹리스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를 받고 있다.

반도체업계가 팹리스생태계를 살려보려 시도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데는 실패했다. 업계는 반도체사업이 국가주도사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

전체 반도체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팹리스분야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팹리스분야 점유율은 1%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미국, 대만, 중국 순으로 팹리스기업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대부분 세계 순위권에 드는 것과 대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반도체시장 매출 순위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달 18일 삼성전자가 2년 연속으로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판매 매출 예비조사에서 약 81조893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점유율은 10.9%다. 2위는 인텔(약 72조2191억원)이며 3위는 SK하이닉스(약 44조8225억원)다.

이런 비대칭 구조는 국내 반도체산업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설계도를 주문받아 생산할 라인은 대규모로 갖췄지만, 정작 설계도를 제공할 고객사가 부족해진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스템반도체시장 진출을 위해 팹리스기업을 인수하거나 키우는 방안을 내놨다. 직접 고객사가 되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제로베이스에서 기업을 일궈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기업을 인수하려 해도 유의미한 규모의 팹리스기업 인수는 반도체공급망과 연계되는 국가들의 제재를 받는다. 

기업차원에서 단기 해결이 어렵다는 의견이 모이고, 정부의 적극적인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는 국내 중소 팹리스기업을 중심으로 지원에 나섰다. 

국내 반도체업체는 메모리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면서 성장했다. 업계는 이제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내 반도체산업 전반이 무너질 것이라 경고한다. 사진=서울와이어 DB
국내 반도체업체는 메모리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면서 성장했다. 업계는 이제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내 반도체산업 전반이 무너질 것이라 경고한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연매출 2조 기업 나와도 막막

국내 팹리스시장이 난관에 부딪힌 동안,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사례도 나왔다. 팹리스기업들이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일부 지적을 무상하게 만든 셈이다.  LX세미콘은 업계 최초로 연 매출 2조원을 넘기는데 성공했다. 회사는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을 주력으로 LG디스플레이 등에 납품을 하고 있다.

회사가 2조원 클럽 입성에 성공했지만 글로벌 반도체시장이 어려운 탓에 실적하락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회사의 주력 제품인 DDI는 IT제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악성재고가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LX세미콘의 사례가 국내 팹리스기업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줬다고 본다. 중소 팹리스기업들의 생존은 대기업 납품에 달렸으며 해외진출 등 외부 활로 개척도 쉽지 않은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에 인재가 몰리고 정부 지원도 실적을 내는 기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팹리스를 살리겠다고 말하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인지해 취임 초부터 팹리스기업 육성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반도체 연구개발(R&D)을 강화해 반도체 수출액을 2027년 1700억달러로 늘린다는 구상을 밝혔다. 

3일에는 올해 47조원을 반도체분야 지원에 사용하고, 팹리스, 소부장분야를 강화해 메모리 고의존구조 탈피와 수출 안정성 강화에 나설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 지원이 더 세밀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도전해 팹리스산업을 키우려 해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의 사례만 봐도 팹리스기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며 “대기업들이 생산성에 집중해 파운드리에서 성과를 낸 것은 반길만한 일이지만 비대칭적인 구조로 산업이 성장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섰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돈만 쥐어주고 끝날 문제였다면 진작에 삼성이나 SK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성과를 냈을 것”이라며 “절름발이나 다름없는 반도체산업을 제대로 자라게 하려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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