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5개국 지원 정책 경쟁적으로 확대
주도권 뺏기면 회복 어렵다는 공감대 형성
소부장업체 영향은 아직, 선제지원 속도전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혹한기를 보내고 있다. 정보기술(IT)제품 전반의 수요 감소가 반도체 가격을 떨어뜨렸고, 지난해 4분기 이후 실적 하락폭이 가팔라졌다. 업계는 올해 하반기에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도체시장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국내기업의 생존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반도체산업이 국가핵심산업으로 여겨지면서 각 국가들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 뒤늦게 지원정책을 확대하면서, 기존 기술우위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와이어 DB
반도체산업이 국가핵심산업으로 여겨지면서 각 국가들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 뒤늦게 지원정책을 확대하면서, 기존 기술우위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서울와이어 한동현 기자] 반도체산업이 각 국가간 대리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등은 미래성장동력인 반도체분야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산업지원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최근 반도체시장이 다운사이클에 들어서면서 국가간 지원책 눈치싸움도 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관련 업계도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미 대기업의 실적하락은 피할 수 없다. 이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 반도체 업사이클 돌입 전에 기술 연구 등 투자를 유지하려 한다. 대기업의 반도체생산공정을 지원하는 소부장업체들은 시장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흥망 가르는 공급망 주도권 싸움

반도체산업분야는 글로벌 주요국가들이 기업을 중심으로 대리전을 치르는 전장이다. 각 국가들은 반도체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보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여긴다. 반도체를 국가주요자산으로 취급하고 각종 지원책을 쏟아붓는 중이다.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이들 국가는 세계 주요국 지위를 두고 경쟁 중이며 반도체산업이 글로벌경제 주도권을 가져올 열쇠라고 여긴다.

미중 반도체 공급망 갈등은 전 세계 반도체업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급망이 재구축되면서 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미중 반도체 공급망 갈등은 전 세계 반도체업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급망이 재구축되면서 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선두에 나선 것은 미국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 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해 약 66조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자국 반도체보호법을 제정했다.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세액공제 혜택을 25%까지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중국에는 견제가 이어졌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장비 수출이 사실상 중단되고, 중국산 반도체가 포함된 제품의 사용도 제한되기 시작했다. 기술력 부재가 단점으로 꼽히던 중국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고급기술이 부족해졌다.

미국의 압박에 투자기업들도 중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중국은 반도체기업의 법인소득세를 사실상 면제하는 수준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시장 2025년까지 약 184조원을 사용해 자국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반도체장비, 기술에 강점을 지닌 대만과 일본도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기존 시장에서의 입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 자국 시장 지원 등을 진행 중이다.

일본은 대만과 네덜란드 등에 반도체시장 주도권을 뺏긴 뒤 다시 재기를 준비한다. 반도체 공장 설비투자비용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5조원 가량을 산업지원기금으로 내놨다. 여기에는 대만 TSMC와의 협력도 포함된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전문국가로서의 위용을 갖추려 한다. 대만은 지난해부터 반도체세액공제를 25%로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에게 반도체산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반도체기업들은 대만을 흡수하려는 중국에게 맞서는 방벽 역할도 수행 중이다. 

장중머우(張忠謀) TSMC 창업자는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고 TSMC를 국유화하려 하면 TSMC의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며 “만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우선순위가 경제적 안녕을 위한 것이라면 공격을 자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내세운 파운드리 기술 초격차의 대표 사례다. 올해는 3나노 2세대 공정으로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더 벌릴 예정이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내세운 파운드리 기술 초격차의 대표 사례다. 올해는 3나노 2세대 공정으로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더 벌릴 예정이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기술우위전략, 투자위한 지원확대 필수

업계에서는 반도체산업 주도권 다툼이 국가 간 대리전 양상으로 이어지자 각자의 무기를 준비한다. 국내의 경우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점한 기술적 우위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연구개발(R&D)은 국내업체들이 할 수 있는 미래 준비“라며 ”자원이나 반도체장비 같은 특정 기술에서는 경쟁국가들에게 밀리기 때문에, 전체 공정 과정에서 기술 초격차를 보여줘 고객사를 끌어들이는 것이 기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반도체의 다운사이클로 인한 투자 축소다. 정부의 소극적인 반도체지원정책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 정부가 입장을 바꿔 대규모 반도체지원책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나아졌지만, 적확한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일 “반도체 산업 위기는 국가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대만, 미국 등 경쟁국과의 경쟁에서 더 이상 밀리지 않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작년 말 어렵게 통과한 K-칩스법에서 시설투자 세액률 고작 8%에 불과하다. 우리 기업에 날개를 달지 못할 망정 모래 주머니를 채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관련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제조업 업종별 수출·투자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이 중 반도체 분야 지원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중심으로 강화된다.

업계는 지원책이 다운사이클 충격을 얼마나 막아줄지 걱정한다. 이미 대기업들의 피해는 기정 사실이 됐으며, 반도체대기업을 지원하는 협력업체들도 점점 다운사이클 영향을 체감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내 협력업체들은 반도체 다운사이클 여파에 영향을 덜 받는다”며 “상반기 대기업들의 실적이 본격적으로 줄어들면 소규모 업체들의 피해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여력이 있을 때 빠른 지원으로 인력,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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