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에서 손해배상 판결 했으나 항소심서 뒤집혀
항소法 “외국주권면제법에 따라 배상 책임서 면책해야”

[서울와이어 천성윤 기자] 주유엔한국대표부(이하 대표부)가 5년간 근무한 운전기사에게 임금 및 근로시간 관련 법과 차별 방지법 위반으로 피소 당했다.
앞서 열린 하급심에선 외국주권면제법(FSIA)에 의거한 ‘관할권 없음(면책권)’ 적용 여부가 최대 쟁점이었다. 당시 법원은 면책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며 대표부 측에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약식판결을 내린 바 있으나, 이번 항소심에선 외교관 면책권이 적용된다며 완전히 결과가 뒤집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제2항소심 법원 대니 친(Denny Chin) 판사는 본 사건의 추가 심리를 위해 지방법원의 약식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친 판사는 “대표부 측 면책권을 무시한 지방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표부 측에 유리한 판결이 이뤄진 것이다.
2016년 6월 한국 국적자이자 미국 영주권자인 남 모씨는 유엔 상임대표부에서 2021년 6월까지 운전기사로 일했다. 남 씨는 대표부의 장관 및 고위 간부들을 위한 전용 운전사로 재직했며, ‘비외교직원’이었지만 ‘외교 의전의 관리’라는 명목하에 각종 사적인 운송 업무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 씨의 나이가 60세에 이르자 대표부는 한국 법률과 대표부 내부 정책에 따라 퇴직을 통보했다. 하지만 남 씨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아내가 직장을 잃었기 때문에 60세 이후에도 고용 계약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정년 연장을 승인했고, 대표부는 남 씨의 계약을 61세까지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대표부는 남 씨에게 고용 연장의 대가로 ‘해고 관련 민사 및 형사 청구를 포기한다’는 합의서를 받았다. 남 씨는 최종적으로 2021년 6월 30일에 해고됐다.
그러자 남 씨는 법원에 대표부와 대표부 외교관 세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세 명은 조현 주유엔한국대표부 대사, 정대용 공사, 조진호 영사다. 남 씨는 초과 수당 등 임금이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퇴직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급심 법정에선 남 씨의 고용이 FISA에 면책 예외 조항으로 있는 ‘상업 활동’의 영역에 해당 되는지 집중 심리했다. 이 예외가 인정되면 대표부는 미국 법원의 관할권에 들어오게 되며 소송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 가능성이 생긴다.
대표부는 FISA 조항을 근거로 관할권이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쳤다. 하급심은 대표부의 의견을 기각하고 남 씨의 고용이 FISA의 예외조항인 ‘상업활동’에 포함된다며 손해배상 청구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FISA는 일반적으로 외국 국가에게 미국 법원에서의 관할 면제(면책권)를 제공하지만 상업활동은 예외이며 운전기사 고용은 상업활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에서 이같은 판결이 완전히 뒤집혔다. 항소법원 친 판사는 “지방법원의 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추가 심리하도록 환송한다”며 “지방법원이 남 씨의 고용 성격에 관한 사실관계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유엔한국대표부는 FSIA에 따라 ‘외국 국가의 기구’에 해당하며, 따라서 원칙적으로 미국 법원의 관할에서 면제된다”며 “지방법원은 남 씨의 고용이 FSIA에서 예외로 적용하는 ‘상업 활동’에 해당된다고 판단 했지만 다시 들여다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요 고려사항은 고용이 상업적인지 혹은 정부 기능에 속하는지를 판단할 때 고용 활동의 특정 성격과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하며, 단순히 고용의 목적만을 기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상업 활동 예외가 적용되려면 해당 활동이 미국과 ‘상당한 수준의 상업적 접점(substantial contact)’이 있어야 하지만, 내부적인 고용에 해당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항소심에서 환송 판결이 나옴에 따라 사건은 다시 지방법원에 옮겨져 쟁점을 다투게 됐다. 항소심 법원이 대표부가 FISA에 의한 면책권 대상이라며 하급심 법원의 논리를 깸에 따라 재판의 무게추는 대표부 쪽으로 기울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