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20세기의 산업화는 석유가 중심이었다. 자동차, 항공, 플라스틱 등 핵심 산업은 석유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석유는 ‘액체 금’이라 불리며 경제의 혈맥 역할을 했다. 물리적 이동이 쉬운 액체 연료의 특성상, 파이프라인과 선박, 트럭 등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석유는 자동차 연료로, 항공기 추진체로, 플라스틱의 원료로 사용되며 산업 전반을 지탱해왔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이제 에너지의 중심축은 석유에서 전기로 옮겨가고 있다. 전기는 손실률이 낮고, 수력, 태양광, 원자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디지털과 전자 기술의 발전과 함께 확장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갖추게 되었다. 전기는 더 이상 하나의 에너지원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재편하는 기반 에너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가 목도하는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전환을 넘어, 세계 질서의 구조까지 바꾸는 ‘축의 이동’이다.

이제 세계는 미국이 지배하는 일극 체제를 넘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에너지 패권을 중심으로 맞서는 양극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군사력이나 외교력의 균형이 아니라, 석유와 전기라는 에너지 기반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전환이며, 각국의 전략과 산업 패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석유, 중국은 전기… 상반된 전략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석유 기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과 안정적 공급, 산업 경쟁력 회복을 앞세워 석유·가스 생산 확대 정책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이 다시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쥐도록 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는 취임 당시 “우리는 다시 부유한 국가가 될 것이며, 우리 발밑의 이 액체 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했고,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미국은 탈탄소 흐름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으며, 유럽이나 한국, 일본 등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하려는 국가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전기 중심의 시스템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주석 체제 들어 ‘일렉트로스테이트(electrostate)’를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며,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2년 시진핑은 “석유·석탄 수입 의존도가 사상 최고이며, 공급선 차단 시 즉사한다”고 경고했고, 이후 중국은 에너지 체질 개선을 본격화했다.

중국은 이미 전력화율 30%를 돌파했고, 청정에너지 산업이 GDP의 10%를 차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신장 사막에는 태양광 패널이, 네이멍구 초원에는 거대한 풍력 터빈이 들어섰고, 동부 연안을 따라 초고압 송전선이 국가의 혈관처럼 연결되고 있다. ‘그리드 리모델링’에 8000억 달러를 투입하며 2028년까지 저탄소 발전원이 전체 발전의 절반을 넘어서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했다.

기술과 공급망까지 수출하는 중국의 에너지 생태계

기술 혁신도 중국 에너지 전략의 핵심이다. 세계 태양광 시장의 80%를 장악한 중국 기업들은 더 얇고 효율적인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를 개발 중이고, 풍력 분야에서는 수십 메가와트급 대형 터빈이 몇 달 단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해상 풍력의 발전 단가는 불과 4년 만에 MWh당 95달러에서 55달러로 급락해, 이제는 석탄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배터리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CATL과 BYD는 매출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ESS와 전기차 배터리의 단가를 대폭 낮췄고, 이는 전력 소비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6월부터 신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시장 가격을 적용하겠다고 밝히며, 재생에너지를 기존 화석연료와 동일한 경쟁의 링 위에 올려놓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중국은 이제 단순한 기술과 제품을 넘어, 에너지 생태계를 통째로 수출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는 물론, 인력과 자본, 공급망까지 함께 움직인다.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은 중국산 제품의 물량 공세에 압박을 느끼고 있고, 미국과 EU는 보조금과 덤핑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난 20년간 전 세계에서 리튬·니켈·구리·희토류 광산을 확보하며 채굴에서 정제, 생산, 소비에 이르는 전 주기 지배력을 강화해왔다. 덕분에 자국의 에너지 혈액형을 바꾸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그 시스템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경제의 재편, 산업의 전환, 국제 질서의 재구축이다. 에너지 축의 이동은 한 국가의 전략 방향을 결정짓는 근본 변수이며,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가는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가오는 6월4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한국도 이런 변화의 물결 위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LNG 의존도를 유지할 것인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선택할 것인가. 단기적인 에너지 안보만이 아닌, 중장기적 비전과 체계적인 에너지 믹스를 마련할 수 있는 전략적 통찰이 절실하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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