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기자.

[서울와이어 이재형 기자] 제약업계에서 담합 사건이 또 터졌다. 담합 대상은 정부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백신이다. 정부에 비싼 값에 백신을 팔기 위해 담합을 했다. 

지난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1개 백신제조사,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잠정금액)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이번 사건으로 제약업계의 담합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관행과 만연화된 행태로 입찰담합에 반드시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가격 공유가 쉬워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낙찰예정자와 들러리를 반복 수행하면서 각자의 역할도 정해졌다. 투찰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투찰하고 의도한 입찰담합을 완성했다.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받기 위해 ‘기초금액’의 100%에 가깝게 투찰하고, 들러리는 이보다 높게 제시한다. 기초금액은 조달청이 시장가격, 전년도 계약가 등을 참고해 검토한 가격이다. 입찰참여자들은 이를 상한가격으로 인식한다.

2011년 6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등 3개사는 이번에도 가담업체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 백신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업체 수가 많지 않아, 담합기업에 입찰금지나 사업 일시 중단 등 강력한 처벌을 내리기 어려운 현실이다. 자칫 백신 수급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제도 하에서 시행가능한 처벌 수단이 과징금이라면, 과징금 ‘철퇴’가 내려져야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공정위가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등에 부과한 과징금은 각각 20억원, 1억8500만원, 4억8200만원이다. 이들 업체의 연매출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제약업계의 고질병인 답합행위를 뿌리뽑기 위해선 솜방망이 처벌이 사라지고, 공정경쟁에 대한 더욱 철저한 정부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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