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법 시행, 원·하청 교섭 '의무화'
다단계 하도급, 교섭 요구방식 예측불가
협력사 '역풍' 가능성, 재계약 압박 우려
원청 비용부담 가중, 집값상승 풍선효과

[서울와이어=안채영 기자]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건설업계에 '노란봉투법' 시행이 예고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6개월 유예 기간을 거친 뒤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법안에 따르면 사용자 범위를, 근로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원청은 건설 현장에 참여하는 하청업체의 근로자들과 교섭 의무가 발생하게 됐다.
노조의 합법 파업 범위도 기존의 '노동 처우'에서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주요 결정'까지로 늘렸다. 임금이나 근로조건뿐 아니라 경영 정책이나 투자 의사결정까지 파업 사유로 인정돼, 결국 노조의 경영 개입이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건설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수많은 협력업체가 참여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운영된다. 현장별로는 수십 내지는 수백개의 협력사가 공정을 분담해 운영한다. 하청 노동자들은 공정별로 이동하거나 단기 용역 근로자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아 교섭 주체와 요구 방식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법 시행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의 취지인 근로자 보호에는 공감하면서도, 건설업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시행된다면 혼란이 클 것으로 내다본다. 일단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법안은 통과했지만 사용자 범위 등 내용이 모호해 시행령이 정확히 정해져야 다음 대응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이 오히려 하청 업체나 협력사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원청이 협력사 선정 기준을 대폭 강화하거나 기존에 문제 없었던 업체와만 재계약을 맺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들이 불리한 계약 조항을 강요받거나 가격 인하 요구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근로자 보호법이 오히려 협력사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 적용이 실제 현장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건설 공정은 원청과 하청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특성 탓에 공기 지연은 양쪽에서 피해를 본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과연 법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법 시행으로 원청인 건설사들의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전관리와 중대재해법 대응에 이어 잦은 파업과 교섭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비용이 늘어나면서 건설사들의 재정적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주택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정책 기조와 반대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앞서 노란봉투법은 21대, 22대 국회에서도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좌절된 바 있다. 이번에는 다시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시행이 확정된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행령과 세부 가이드라인에서 건설업의 특수성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노란봉투법은 근로자 보호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원청·하청 모두를 옥죄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