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8일 신경영 20주년 만찬 행사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오른쫃 두번째)과 홍라이 여사가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2013년 10월 28일 신경영 20주년 만찬 행사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오른쫃 두번째)과 홍라이 여사가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은 화려했지만, 정작 자신은 늘 외로웠던 경영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이렇게 정의해 보고자 한다. 이건희 회장의 재임 동안 삼성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삼성은 그의 취임 당시 10조 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 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 원에서 72조 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396배나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에게 있어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경영 활동을 통해 거둔 숫자는 ‘이렇게 했기 때문에’ 거둔 성과, 즉 과거형이다. 지나온 과정의 성과물인 숫자를 놓고 왜 환호해야 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희 회장은 늘 미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미래를 지향했다. 삼성 본관에 집무실이 있으나 이건희 회장은 대부분 시간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서 보냈다. 이곳에는 여러 대의 TV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건희 회장은 TV에 영상을 동시에 켜놓고 시청했다. 전자사업을 일으킬 시기에는 매월 한 차례 이상 당시 기술 면에서 앞서나갔던 일본을 방문하고 주요 전자 상가를 둘러보며 신제품을 체험한 그는 이후에도 혁신이 벌어지고 있는 해외 각지를 돌아다니며 눈으로 살펴보고 주인공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신경영’이다. 하지만 신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해 이건희 회장은 끊임없이 임직원들이 깨우치도록 ‘설득’ 시켜야 했다. 한국반도체를 사재로 인수해 반도체 사업의 시초를 닦았을 때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200여 명의 경영진을 모아 ‘질 경영’을 선언했을 때에도, ‘디자인 혁명’을 통해 삼성 제품의 가치를 높이려고 할 때도 눈앞에서 ‘어렵다’, ‘안된다’, ‘불가능하다’라는 말로 저항하는 경영진들의 벽에 부딪혔다. 발상을 전환하면 이뤄낼 수 있는데 늘 그것을 외면하는 석고처럼 굳은 조직 문화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주 잠깐은 스며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적이라는 숫자가 좋게 나오자 조직은 다시 돌처럼 굳으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런 문화를 철저히 깨고자 했다.

신경영 선언 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회장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화장실’을 지목했다. 회사 생활 중 개인이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화장실이고, 화장실에서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생각 중 하나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삼성 본사 화장실 시설을 최고급으로 꾸미라고 했다.

티스푼을 던지고, “말기 암 환자 같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혁신하지 않으면 삼성은 망할 것”이라는 등 원색적인 표현을 들어 질책해도 도무지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는 임직원들에게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며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최선의 방법론까지 제시를 해주었는데도 의도한 만큼 따라오지 못했다. 경영자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사람을 연구하는데 쏟아부었다는 그조차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기란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화장실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도 얻으려고 했을까. 그래서 이건희 회장 주변에는 국내 기업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늘 외로웠을 것이다.

시간은 더뎠지만 어쨌건 이건희 회장의 뚝심 덕분에 삼성은 변화했고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도 이건희 회장은 여전히 삼성, 더 나아가 한국이 내재한 가능성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혁신을 주체로 한 신경영이 새로운 구태로 머무는 것을 경계했다. 1993년 신경영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경영 주창 20년을 맞아 지난 2003년 열린 기념행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2.0의 기반은 “우리의 이웃과 지역사회와 상생하면서 다 함께 따뜻한 사회,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25일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이제 삼성 경영의 바통은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물려받는다. 이재용 부회장도 아버지만큼이나 현재의 안정에 머물고자 하는 심리를 깨고, 지속해서 혁신해나가야 한다. 이미 사업장 방문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갈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원하는 만큼 빠르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밀리지 않고 혁신을 관철해 나가야 한다. 외로운 여정은 경영자라면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과연 ‘뉴 삼성’은 어떤 방법으로 혁신을 해나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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