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사라진 먼로주의와 아메리카 퍼스트

먼로주의는 1823년 12월 2일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밝힌 외교 방침이다. 이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에 상호 불간섭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외교적 고립정책이다. 유럽 국가들의 아메리카 대륙에의 식민지 건설 배격이 천명되었다. 이 선언으로 중남미 독립 국가들은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게 된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메리카 대륙 내에 질서가 미국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재편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는 평가를 한다. 그런 하나의 아메리카 대륙의 정신은 갈라진 것인가. 하긴 이전에도 중남미 많은 국가들의 반미 감정 외에도 금이 가게 한 사례가 있었다.

NAFTA는 북미 자유 무역 협정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체결한 자유 무역 협정이다. 1994년 1월 1일에 발효되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1기에서 미국 측 재협상 요구로 NAFTA는 2020년 7월 1일에 발효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대체되었다. USMCA에는 미국의 강요로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명시적으로 삽입됐다.

이에 따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모두 중국과의 FTA 공동연구를 전부 취소하였다. 미국, 캐나다와 멕시코가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는 자동차 260만대에 한해 면세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도 삽입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10여일이 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1일 서명했다. 중국에는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는 25%를 매기는 것이다.

이번 관세 부과 조치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3월 1일로 유예되었다. 다만 원유를 비롯한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에너지 제품에는 10%의 관세를 물린다. 캐나다는 석유, 전기, 천연가스 등 미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관세율로 유럽연합(EU)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을 공언했다.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수익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관세를 장려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두렵게 느껴진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즉각 보복 관세를 부가할 것을 천명해 맞불을 놓았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는 상대국이 미국에 대해 관세 인상으로 대응할 경우 관세율을 더 올리거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보복 조항도 포함돼 있다.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미국의 이번 조치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것이라지만 USMCA의 정신은 사라졌다.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등 치명적 마약이 미국 국민을 죽이는 중대한 위협 때문에 이번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허공에 메아리친다. 먼로주의는 오간데 없고 관세, 보복관세, 재보복관세로 이어지는 무역전쟁 악화 가능성이 난무하게 생겼다.

무엇이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간 문제였을까? 미국이 이렇게 관세를 부과한 것은 캐나다·멕시코·중국이 자국의 3대 교역국이자, 대미 무역흑자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적자 순위는 중국(1위), 멕시코(2위), 캐나다(9위) 순이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2,704억달러(395조원)였다. 미국은 그간 중국에 대해 60% 관세 부과를 천명하였는데, 10%만 추가 관세를 매긴 것은 점진적으로 타격을 입히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위안화도 점진적으로 약세를 시현할 전망이다.

멕시코 수출의 80%가 미국이다. 미국의 대 멕시코 무역적자는 지난해 11월까지 1572억달러(230조원)로 대미 흑자폭이 크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전 세계 국가의 현지 공장이 멕시코에 집중적으로 들어선 게 대미 수출에 큰 영향을 주었다. 100% 관세로 미국 시장에는 못 들어가는 중국의 전기차 회사도 멕시코에 집중적으로 공장을 지어왔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피해 베트남과 멕시코 등을 통한 우회수출을 크게 늘린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은 그간 베트남과 멕시코 공장에서 상품을 제조해 원산지를 변경한 후 미국에 수출했다.

결국 이번 조치는 중국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은 멕시코로 부품, 반제품을 팔아 멕시코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멕시코는 막대한 무역흑자로 페소화 평가절상을 경험했다. 멕시코가 뜬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멕시코에는 아디다스, 삼성, 혼다, 현대, 폭스바겐, 볼보, 레고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산업단지를 구축했다.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 기업들도 멕시코 공장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국 이전)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뭘까. 근접한 지리적 이점,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의 효율성,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과 공급망 탄력성, 포괄적 무역협정 체결 등을 꼽을 수 있다.

스페인, 캐나다, 일본, 독일에서의 투자까지 몰려들어 멕시코는 외국인직접투자 역사를 새로 썼다. 멕시코는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1위 수입국으로 당당히 발돋움했다. 그 멕시코의 위상이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불이익으로 바뀐다니 얼마나 가슴 아프겠나. 멕시코 페소는 트럼프 대선 캠페인 때부터 이를 반영해서 평가절하되기 시작했다.

멕시코를 위한 무관세 혜택을 중국이 가져가니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캐나다도 정치와 경제에서 중국에 잠식당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판단했을 것이다. 캐나다에는 혼다, 토요타, 볼보 등의 자동차 및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일과 우리나라의 문제

첫째, 미국의 관세 부과는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교역을 축소해 경기를 둔화할 수 있다. 관세 부과국과 그렇지 않은 국간에 희비가 엇갈릴 것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 트럼프 대통령은 개별 국가와 거래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이에 미국 달러 강세, 국채 금리 인상으로 올해 미국 기준 금리 인하에 제약이 가해 질 것이다.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재고품의 영향으로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시간차가 있다는 말이다.

미국 달러 강세는 미국 내 물가 안정에는 좋지만 미국의 해외 수출에는 문제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래 강달러론자가 아니기에 앞으로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물가 실책으로 당선되었다.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레임덕에 빠질 수 있기에 향후 그의 또 다른 행보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당분간 강달러 현상으로 우리 환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둘째, 멕시코와 캐나다에 있는 우리 기업의 대응과 향후 추가되는 관세 품목이다. 특히 멕시코에는 기아가 있다. 작년 1~11월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 25만3000대 중 절반 넘는 12만9000대가 미국에서 판매됐다. 같은 기간 기아 미국 판매량(약 72만3000대)의 약 18%가 멕시코에서 생산된 것이다.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기아는 멕시코 생산 물량 일부를 캐나다, 유럽, 남미 등으로 선적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이로 인해 부족해지는 미국 판매 물량은 미국과 한국 공장을 활용해 메우겠다는 복안이다.

자동차 업계는 GM, 도요타 등 대부분의 업체가 멕시코에서 차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관세 부과는 미국 내 차량 판매 가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현대차는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차량 대부분을 미국 현지 공장과 한국 공장 수출분으로 대응하고 있어 이번 관세 부과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멕시코에 생산거점을 둔 우리 가전업체는 일부 가전제품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을 활용해 건조기 등 생산을 검토 중이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 공장으로 멕시코 생산라인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의약품, 철강, 알루미늄, 구리, 원유, 가스 등 품목에 향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 등은 수개월 내에 부과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중국의 행보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이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 수출을 다른 나라로 돌리는 가운데 저가 수출과 기술 공세에 나설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유럽 제조업체가 미국의 관세 부과보다 중국의 저가 수입품이 늘어나는 것이 더 우려된다고 응답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 중국은 이번 미국의 관세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는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8위 국가여서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우리의 지난해 연간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556억9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관세 장벽을 쌓아 올리는 미국을 ‘포트리스 아메리카(요새미국)’라고 부른다. 관세 전쟁에서 주된 타깃은 무역흑자국이 분명하나 중국을 가장 우선순위로 저격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이번 관세장벽을 넘기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 기업과 경쟁 없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가진다면 우리에게는 기회이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 것인가. 그래도 미국 내에서 현지 기업 인수합병(M&A), 합작법인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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