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삼성SDI 책임 없다 '사건 기각'
항소심 재판부, 관할권 인정 '파기환송'
배터리공급 책임 놓고 '쟁점 다툴' 전망

삼성SDI 기흥사업장. 사진=삼성SDI
삼성SDI 기흥사업장. 사진=삼성SDI

[서울와이어 천성윤 기자] 삼성SDI가 미국에서 발생한 전자담배 발화 사건 하급심에서 승소하며 책임에서 벗어났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관할권을 인정하며 이를 파기환송해 다시 쟁점을 다투게 됐다.

◆아마존에서 배터리 구입해 전자담배 사용

14일(현지시간) 미국 제5순회 항소법원 캐롤링 D. 킹(Carolyn D. King), 에디스 H. 존스(Edith H. Jones), 앤드류 S. 올드햄(Andrew S. Oldham) 판사는 다수의견으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파기환송했다.

앞서 텍사스주(州) 연방법원에서 진행된 하급심에서는 삼성SDI의 관할권이 텍사스에 없다며 사건을 기각했다.

이번 사건 원고 제임스 이드리지(James Ethridge)는 2018년 미국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마크로몰(Macromall)이라는 판매자로부터 삼성SDI의 18650 리튬이온 배터리를 구매했다. 그는 이 배터리를 증기형 전자담배 기기에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SDI는 해당 아마존 판매자를 승인한 적이 없으며 제품 유통은 비공식 채널로 이뤄졌다.

2019년 11월 이드리지는 텍사스에서 일상적으로 전자담배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배터리가 그의 주머니에서 폭발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그는 삼성SDI에 책임을 돌리며 배터리 결함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며 2021년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드리지는 “삼성SDI는 이 배터리가 위험한 용도로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데도 적절한 유통통제를 하지 않았다”며 “전자담배 사용 금지 등의 주의 문구가 불충분했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하지만 연방법원은 피고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해 각하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제품은 지름 18㎜, 길이 65㎜(18650)의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인데 설계 용도는 노트북, 전동공구, 전기차 배터리팩 등 팩 내부 조립용이며 셀 단독 사용은 못하도록 설계됐다.

삼성SDI는 이에 대해 관할권을 중심으로 항변했다. 회사는 한국에 있으며 텍사스에 법인, 사무소, 공장 등 물리적 존재가 없다고 했다. 텍사스와 관련성 있는 활동을 하지 않아 텍사스 법원이 관할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SDI는 “제품 판매는 오직 ‘공급망 파트너’를 통해서만 이뤄졌고 삼성SDI는 이드리지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지도 않았다”며 “비공식 유통망을 통해 텍사스로 흘러들어간 것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항변했다.

이어 “자사는 해당 아마존 판매자에게 제품을 공급한 바 없고, 유통 승인을 한 적도 없다”며 “제품이 어떻게 원고 손에 들어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게다가 18650 배터리는 ‘배터리 팩’에 통합되는 목적으로 설계됐으며 전자담배 사용은 사용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아 ‘예상할 수 없는 남용’에 해당돼 사고 책임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급심, 삼성SDI 승소 판결… 항소법 뒤집어

이날 재판부는 하급심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해 다시 돌려보냈다. 하급심과 전혀 다르게 관할권을 인정한 것이다.

다수 의견을 낸 킹, 올드햄 판사는 “삼성SDI와 B2B 거래를 하는 HP, 델(Dell), 블랙&데커(Black & Decker)는 텍사스에 있는 기업이고 이들에게 18650 배터리를 판매해왔다”며 “이는 텍사스 시장에 적극 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고는 텍사스 거주자이기 때문에 양측의 ‘관련성’이 성립한다”고 밝혔다.

또 “사고 제품은 삼성SDI가 텍사스 업체에 공급해 온 모델과 같다는 점도 관련성을 충족시키는 부분”이라며 “텍사스 내에서 동일 모델 배터리가 판매됐다면, 그 배터리와 사고 장소의 일치성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SDI가 배터리를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지 않았다고 해도 유통경로 통제 실패는 관할권 배제 사유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소심 판결문 1면. 사진=미국 연방 순회항소법원항소심 판결문 1면. 사진=미국 연방 순회항소법원
소심 판결문 1면. 사진=미국 연방 순회항소법원항소심 판결문 1면. 사진=미국 연방 순회항소법원

다만 존스 판사는 이의 의견을 냈다. 그는 “삼성SDI는 18650 배터리를 HP, 델, 블랙&데커 등의 기업에만 납품했고, 소비자 대상으로 직접 판매 또는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며 “원고 또한 배터리를 와이오밍주(州) 소재의 제3의 온라인 판매자로부터 구매했기 때문에 삼성SDI의 텍사스 영업활동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SDI는 소비자 대상 판매를 피하기 위해 유통망을 제한하려고 노력했다”며 “만약 이번 사건에서 삼성SDI의 잘못이 인정된다면 모든 기업은 전 세계 어디서든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을 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삼성SDI는 하급심에서 쟁점을 다시 다투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에서 관할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종결시켰기 때문에 환송심에서는 이를 더 다루지는 않고 배터리 제품의 결함 및 책임 유무에 대해 다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해당 제품의 전자담배 기기 사용은 명백한 오용이므로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유통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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