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관리계획 확정…증거개시·서면 절차 구체화
메리츠 ‘선의’ 입증 vs 피카드 자금 흐름 공방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미국 법원이 메리츠화재와 메이도프 펀드 환수 소송의 절차적 틀을 확정하면서, 사건은 증거와 사실관계를 다투는 단계로 넘어갔다. 지금까지는 ‘이 소송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법리 논쟁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실제 자금 이동 경로와 당사자의 인식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 2월 15일, 미국 뉴욕주(州) 남부 연방파산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소송관리계획(Case Management Plan)’을 확정했다. 이는 당사자들이 따라야 할 기본 절차와 일정을 정리한 문서로 ▲사실심리 종료 시한 ▲문서 제출 요구 기한 ▲증거교환 방식 ▲국외 증거조사 방법 등이 포함됐다.

재판부는 사실심리 기한을 설정하고, 양측이 문서 제출 요구와 사실확인 요청을 마치도록 했다. 모든 자료는 전자 데이터룸을 활용해 교환하도록 했으며 텍스트 검색이 가능하고 작성자·날짜 등 메타데이터가 포함된 상태로 제출해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양측이 공동 증거개시 계획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도록 했다. 증거개시는 소송의 핵심 절차로, 각종 자료 제출 요구와 이에 대한 대응 방식이 포함된다. 분쟁이 생길 경우에는 구두 변론 대신 서면 신청(written application)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했으며 모든 신청과 자료 교환 역시 서면 중심으로 진행하도록 규정했다.

국외 증거 확보 절차도 구체화했다. 메리츠 관련 자료나 증인이 해외에 있는 경우 헤이그협약 절차나 사법공조(letters rogatory)를 통해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피카드 측은 방대한 자료를 전자 시스템으로 제공할 수 있으며, 피카드 본인에 대한 신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지되는 등 국제 소송의 성격을 고려한 절차적 안전장치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소송은 법리 논쟁 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사실심리 절차로 접어 들었다. 

이후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2024년 9월 16일 동법원은 제1차 수정 소송관리계획(First Amended Case Management Plan)을 발령했다. 이는 최초 관리계획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건의 진행 상황과 당사자들의 준비 상태를 반영해 절차와 일정을 다시 조율한 조치였다.

수정된 계획은 특히 증거개시 범위와 기한을 새롭게 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초 계획에서는 사실심리 마감 기한을 2025년 3월로 잡았지만, 수정된 계획에서는 이를 2025년 12월로 연장해 약 9개월의 추가 시간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문서 제출 요구와 사실확인 요청 기한도 각각 2025년 6월과 8월로 새롭게 정리됐다. 

자료=미국 뉴욕주 남부 연방파산법원
제1차 수정 소송관리계획. 자료=미국 뉴욕주 남부 연방파산법원

또 분쟁 해결 방식도 강화됐다. 최초 계획에서도 분쟁 발생 시 서면 신청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했지만, 수정된 계획은 당사자 간 협의를 우선적으로 의무화했다. 자료 제출 범위나 기한을 두고 다툼이 생기면 먼저 직접 합의하려 노력해야 하고, 합의가 불가능할 때만 법원에 판단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증거교환 방식 역시 구체화됐다. 방대한 자료가 전자 시스템으로 제출된다는 큰 틀은 같지만, 수정 계획에서는 모든 자료가 텍스트 검색 가능해야 하고 작성자·날짜·파일 경로 등 메타데이터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자료가 검색과 추적이 용이하도록 형식을 엄격히 규정한 것이다.

또한 증인 신문과 관련해 ‘장소 편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확대했다. 메리츠 현직·전직 임직원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증인에게 편리한 장소에서 진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고, 이는 해외 증거 확보와 맞물려 실무적인 유연성을 제공했다. 최초 계획에서 규정된 ‘피카드 본인 신문 금지’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으나, 다른 증인들의 조사 절차는 현실적으로 조율됐다.

이번 결정에 따라 메리츠는 환매 당시 자신들이 ‘선의(good faith)’였음을 입증해야 했다. 해외 법인을 통한 거래라는 주장만으로는 항변 근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메리츠는 내부 투자 의사결정 과정과 실사(due diligence) 자료, 투자위원회 보고 등 사기 구조를 인지할 만한 정황이 없었다는 점을 제출해야 했다. 특히 수정된 계획을 통해 자료 범위가 구체화되면서 제출 문건 역시 명확해졌다.

피카드 측은 뉴욕 메이도프 증권사(BLMIS) 계좌에서 출발한 자금이 메리츠에게 도달했다는 점을 입증할 기회를 확보했다. HSBC 뉴욕 지점, JP모건 뉴욕 계좌 등 중간 금융기관을 거쳐 자금이 이동한 과정을 회계 자료와 도표로 제시해야 했고, 해당 금액과 시점이 메리츠가 수령한 환매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줄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또한 메리츠가 단순히 선의의 투자자가 아니었음을 주장하기 위해 금융시장 상황, 내부 커뮤니케이션, 외부 감사·감독 문서 등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메리츠가 환매 시점에 사기 구조를 알았거나 최소한 의심할 수 있었는지를 다투는 핵심 자료로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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