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량 늘었지만 상업적 매력은 '의문'
쇄빙선 의존·보험 부담·지정학 변수 중첩
부산항 친환경 인프라와 법제 정비가 관건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온난화로 북극해 해빙이 빨라지면서 북극항로가 새로운 무역 루트로 주목받는다. 최근 중국이 영국과 연결되는 북극항로 상업운항을 시작했고 우리 정부도 경제성 검토에 착수하며 높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정작 해운업계에서는 “생각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짧아진 항로가 곧바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사진=해양수산부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사진=해양수산부

◆물동량 급증했지만, 상업 운항은 '불확실'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북극항로를 통한 물동량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398만t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3150만t으로 8배 이상 늘었고 2023년에는 3780만t을 기록했다. 러시아는 2035년까지 1억3000만t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 구상을 내세우며 북극항로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최근 출항한 ‘이스탄불 브릿지’호는 중국 저장성 닝보항에서 영국 펠릭스토우항으로 향하며 “수에즈를 경유할 때보다 운항일수를 절반 가까이 줄이고 탄소 배출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홍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상업 운항에서는 높은 보험료, 항만 인프라 부족, 불규칙적인 빙해 구간 등으로 기대만큼의 효율성이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 정부 역시 북극항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북극항로 개방 대비 상업 운항 경제성 분석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북극권 8개국의 투자 동향과 수요를 조사하고, 항로별 운항 조건과 규제를 비교·분석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기존 수에즈·파나마 운하와 비교한 장단점, 선박 유형별 적합성, 국적 선사 지원 방안 등도 검토 대상이다. 용역은 내년 3월까지 진행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전략과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필요한 '쇄빙선', 친환경·지정학 리스크는 과제

온난화로 해빙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상업 운항에는 쇄빙선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을 중심으로 항로 운영을 주도하고 중국 역시 쇄빙선 건조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문제는 쇄빙선이 고출력을 요구하는 구조여서 액화천연가스(LNG)나 수소 같은 친환경 연료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앞으로 친환경 연료 기반 쇄빙선 기술 개발이 북극항로 상용화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경제성 외에도 또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북극항로는 지정학적 불안이 상존한다. 러시아는 북극군사령부를 창설하고 방공망과 핵잠수함 전력을 배치했고 미국도 알래스카·그린란드 기지를 통한 감시망을 강화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극이사회가 사실상 나토 대 러시아 구도로 재편된 점도 위험 요인이다.

국내에서는 법률적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 해상법, 해양법 등 제도 정비가 미흡해 선사들이 위험을 부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 세미나에서도 “법적 리스크 극복 없이는 상업적 운항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산항 준비도 변수… 친환경 인프라 연계 필요

국내 항만 인프라와의 연계도 중요한 변수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로 통항하는 선박에 친환경 연료 사용 의무가 강화될 경우, 부산항이 LNG·암모니아 등 대체연료 벙커링 기지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이 울산의 에너지 산업, 경남의 조선·기계 산업과 긴밀히 연결된다면 북극항로를 활용하는 선박의 기항지로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유럽을 잇는 운송 거리를 9~15일 줄이고 탄소 배출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잠재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항로 안정성, 쇄빙선 의존도, 지정학 리스크, 제도 미비 등이 겹치며 실제 선사들에겐 아직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는 전략적·정치적 상징성은 크지만 당장 상업 운송 수단으로는 매력적이지 않다”며 “경제성과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선사들이 선뜻 뛰어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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