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이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됐다. 론스타는 우리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하고 부당 과세, 손실을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번 소송은 한국 정부가 사실상 처음으로 치르는 투자자-국가간 소송이다. 소송에 질 경우 물어줘야 하는 배상금도 5조원이 넘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한택근)은 "정부의 밀실주의 행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론스타의 소송대리인은 국내 로펌 ‘세종’과 미국 대형로펌 ‘시들리 오스틴’이다. 우리 정부는 ‘태평양’과 ‘아널드 앤드 포터’를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법무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 6개 유관 정부부처 팀장급 실무자 10여명으로 구성된 정부합동대응팀
을 워싱턴 현지에 파견했다.

 
■먹튀의 대명사 '론스타'

론스타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한국에 들어왔다.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 등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엔 카드채권도 사들였다. 론스타는 이를 되팔아 큰 수익을 냈고 부동산에도 손을 뻗쳤다. 스타타워가 대표적이다. 2001년에 현대산업개발에게서 6330억원에 인수해 3년뒤에 곧바로 9450억원에 팔아 3120억원의 차익을 냈다. 

서울은행 인수전(2002년)에 나섰다가 실패하자 외환은행 인수전으로 방향을 돌려 1조3834억원에 외환은행을 인수(2003년)했다. 당시 은행법은 외국계 산업자본이 10% 이상 은행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음에도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예외 조항을 들어 매각을 승인한다.
 
론스타는 이를 다시 되팔기위해 여러 은행과 접촉한다. 2006년 국민은행, 2007년 HSBC 등과 매각협상을 했으나 결렬됐다. 결국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되판다. 론스타는 이를 통해 배당금과 지분매각 등으로 4조6635억원의 수익을 낸 뒤 한국을 떠난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론스타는 다시 한국정부가 지분매각 승인을 제때 해주지않아 HSBC 등에 팔 기회를 놓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론스타는 국세청과도 8천억원대의 세금소송도 진행중이다.

■핵심 쟁점은 2가지
 
이번 소송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이다.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현지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법 때문에 입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국제기구의 중재를 받는 제도다.

이번 소송은 우리 정부가 사실상 처음으로 치르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이다.

세계은행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1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이 참석한 가운데 이번 투자자-국가 간 소송의 1차 심리를 열렸다. 1차 심리는 오는 24일까지 10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최대 쟁점은 론스타의 주장처럼 정부의 지연 행위 여부다. HSBC와 매각협상을 하며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으나 정부가 승인을 미루면서 HSBC와 계약이 파기돼 손해를 봤다는 게 론스타의 주장이다.

우리 정부는 당시 론스타 헐값 매각과 외환카드 허위감자설 유포 등과 관련한 사법절차가 진행돼 섣불리 매각승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스타는 2006년 12월 외환은행 헐값 매각에 대한 배임사건으로 기소됐다. 2007년 1월에는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으로 기소됐다. 2007년 9월에는 두 사건 모두 법정공방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금융정책 라인 고위급 인사는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전태신 전 국무조정실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회장 등이다. 이들은 ISD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또다른 쟁점은 부당하게 세금을 물었다는 주장이다.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을 근거로 과세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자회사들을 통해 외환은행 등 국내 자산에 투자했다. 페이퍼컴퍼니는 실체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는 상태로 기능을 수행하는 회사다.

론스타는 당시 국내자산 투자가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벨기에법인을 통해 외환은행을 매각한 만큼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론스타는 국세청이 투자협정을 위반하고 자의적으로 8천억원대의 세금을 물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자협정에 '페이퍼컴퍼니의 투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론스타가 실체없는 자회사를 통해 투자한 만큼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쉬쉬하는 정부, 무엇이 찜찜한가

정부가 이번 ISD 진행 상황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그동안 정보공개를 수차례 청구하고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민변은 지난 15일 '정부는 론스타 ISD에 대한 민변 참관 거부를 철회하라'는 성명을 내고 "지속적으로 정부에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관철할 것이며 밀실주의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국가적·사회적·역사적·도덕적·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위원장 송기호)는 5조원대 국가 예산이 걸린 소송인 만큼 국민이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며 지난 7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참관 신청서를 냈지만 14일 거부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민변은 "우리 정부의 거부로 인해 론스타 ISD 첫 심리에 참관하지 못하게 됐다"며 "정부는 거부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민변뿐 아니라 국민 중 누구의 참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감추려 할수록 국민의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경우 홈페이지에 ISD 관련 자료를 대부분 공개하는 등 국제사회가 최근들어 ISD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최근 미국계 투자회사 스펜스와 벌이고 있는 ISD 소송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와이어=김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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