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의사가 주요 문항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소견 내
"보험회사 의료자문이 과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

A씨가 받은 현대해상(위), DB손해보험(아래)의 의료자문 회신서. 
A씨가 받은 현대해상(위), DB손해보험(아래)의 의료자문 회신서. 

[서울와이어 최석범 기자] 서로 다른 보험회사가 한 고객이 의뢰한 의료자문에 관해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문서를 회신하면서 신뢰도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남성·50대)는 올해 초 자신의 목 부근에서 이물감이 계속되자 외과전문 병원을 찾았다. 이물감과 통증이 느껴진다고 말했고,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다.

조직검사 결과 갑상선 결절 양성 판정됐다. 갑상선 결절은 갑상선 세포의 과증식으로 조직의 어느 한 부위가 커져서 혹을 만드는 경우를 의미하며, 양성과 악성으로 구분한다.

당시 의사는 A씨의 갑상선 결절 크기가 커서 고주파 절제술을 실시하는 게 좋다는 소견을 냈고, A씨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수술을 받았다. 이후 A씨는 본인이 가입한 상품의 보험사 현대해상과 DB손해보험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두 보험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였다. 

A씨가 가입한 상품의 약관 속에는 OO대 질병으로 진단 확정되고 직접적 치료를 목적으로 약관이 정한 수술을 받은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약관대로라면 보험금이 지급돼야 하지만, 두 보험회사는 갑상선 결절 수술을 할 정도의 적정한 상황이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실랑이 끝에 의료자문을 받아 시시비비를 가려보자고 의견을 모였다. 의료자문은 현대해상과 DB손해보험이 위탁계약을 한 대행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A씨는 현대해상과 DB손해보험으로부터 받은 의료자문회신서를 받아보고는 당황했다. 서로 다른 보험회사의 의료자문서의 질문과 답이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A씨의 두 의료자문 회신서를 살펴본 결과 1번 문항과 세부문항, 이에 관한 답변은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동일했다.

이에 어떤 의사가 의료자문을 했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받은 의료자문 회신문에는 병원 이름만 적혀있을 뿐, 어떤 의사가 자문했는지 적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험회사의 의료자문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자문은 보험회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대행업체가 의료기관에 맡기는 구조인데, 대행업체 입장에서 보험회사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험금 지급 소견을 많이 받아오는 대행업체에 보험회사가 물건을 맡길 이유가 없다.

한 손해사정사는 "의학적인 견해는 같을 수 있다. 생각을 다른 의사와 공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도 답변도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게 쓰는 건 있을 수 없다"며 "대행업체가 쓴 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의 주치의가 객관적이지 않으니, 제3의료기관의 전문의에게 맡겨 공정하게 가리자는 게 취지"라며 "이런 구조에서 시행되는 의료자문이 과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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