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전세계의 이목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려 있고, 최근 그 쪽의 최대 관심사는 '탱크'였다.
미국과 독일은 현대화된 전차 지원을 놓고 서로 핑퐁게임을 하다가 다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의 압력에 밀려 독일은 레오파드2, 미국은 M1에이브럼스를 각각 지원하기로 했다.
독일을 제외한 모든 나토 국가는 우크라이나군이 가장 원하는 레오파드2를 제공하길 바랐으나 독일은 국내 여론과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해 미국이 먼저 주력전차 지원에 나서야 자신들도 움직이겠다고 맞섰다. 결국 미국이 M1에이브럼스 지원을 결정하자 독일도 레오파드2 제공을 공식화했다.
미국은 M1에이브럼스 31대, 독일은 레오파드2 14대를 내놓기로 했다. 독일의 뒤를 이어 폴란드,핀란드, 캐나다 등 독일제 레오파드2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지원도 잇따를 전망이다. 영국은 이미 주력전차인 챌린저2 14대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모두 합하면 100대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탱크는 800km가 넘는 긴 전선에서 초강대국 러시아 정규군과 맞서 11개월째 사투를 벌이는 우크라이나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산된지 40~50년된 옛 소련제 T-72 고물탱크를 주력 기갑장비로 러시아에 대항하던 우크라이나로서는 천군만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탱크가 전쟁의 흐름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수는 없다. 러시아는 계량형 T-72 탱크 수천대를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레오파드2나 M1에이브럼스, 챌린저2의 성능이 우수하다고해도 100대로는 절대 역부족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겨우 이런 수준의 탱크지원을 나토가 결정하는데 수개월이 걸렸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나 EU 국가는 아니지만 폴란드를 비롯해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패해 러시아권에 편입되면 옛 소련 시절처럼 유럽 전역은 다시 '러시아 공포'에 떨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토와 유럽연합(EU)은 전쟁 발발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 중무장 무기 지원이 현안이 되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나토의 주축국인 미국과 독일로서는 당장 핵탄두 1만여발을 보유한 러시아가 목에 걸렸을 것이다. 주력 탱크 지원이 러시아를 '이상행동'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전쟁이 더 가열돼 지금보다 깊숙이 개입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 탓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투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간절히 원하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쉽게 실현될 것 같지 않다.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원하지 않을뿐 '확실한 승리'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 소모전 끝에 러시아가 스스로 발을 빼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동맹국인 한국에 일종의 핵우산인 '확장억제'를 약속하고 있지만 미국 본토가 북한의 핵무기 사정권에 들어간 상황에서 핵우산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거다. 우크라이나에서 나토의 행태를 보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자국 국민을 핵 공격에 노출시켜가면서까지 한국을 위해 핵우산을 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의 연두 업무보고 때 우리나라의 자체 핵보유를 언급한 것은 국가 안보를 책임진 통수권자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과 주변국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국방부와 외교부는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확장억제를 강화하자는 차원이라고 주워담았으나 우리의 근본적인 안보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봉합할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할 일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 과학기술로 더 이른 시일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견제와 핵확산금지조약(NPT), 경제에 미칠 영향 등 걸림돌이 많겠지만 미국을 비롯한 우방을 설득해가면서 어떻게 하든 핵 보유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동서고금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라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짓은 없다. 동맹이라는 것도 스스로를 지킬 깜량이 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것이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와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관통하는 진리이다. 우크라이나는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러시아 한 곳이지만 대한민국은 전후좌우, 동서남북이 모두 믿을 수 없는 나라들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종현 본사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