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졸업작품전시회에서 ‘아버지의 자동차’ 팀 16명의 학생들은 ‘아버지’와 ‘자동차’라는 평범한 소재를 엮어 특별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한국 자동차 산업의 흐름과 역사를 아버지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 눈길을 끄는 작품 전시를 하고 책으로도 엮어 출간했다.

이들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은 디자인 역사연구를 통해 현재 디자인의 한계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건국대 오창섭 교수가 이끄는 ‘메타디자인팀’으로 ‘아버지의 자동차’ 역시 디자인의 학문적인 탐구와 창조적인 실험정신을 추구하는 메타디자인의 관점에서 비롯됐다.

이번 전시 디렉터를 맡은 이지숙 학생(산업디자인 4학년)은 “기존의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지극히 평범한 존재였던 아버지들의 삶을 통해 가장 생생한 역사적인 기록과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아버지의 자동차’는 전시장에서 연표테이블과 자동차 관련 물품, 영상물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연표테이블에서는 국내자동차의 역사와 아버지들의 삶을 한데 엮어 1960년부터 2016년까지의 역사를 커다란 흐름으로 보여준다. 연표 주변에는 실제 아버지들이 자주 사용했던 도로지도책자 등 다양한 자동차 관련 물품들을 배치했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와 스크린에서는 프레스토, 소나타 등 과거 자동차 관련 광고를 모은 영상과 자동차 전문가 인터뷰 영상, 5명의 아버지 인터뷰 영상 등이 펼쳐졌다.

16명이 참여한 이번 대형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은 각 파트마다 개개인별로 구체적인 역할을 맡아 진행했다. ‘1960년 이후의 한국‘을 주제로 한국의 의·식·주, 기술·정치 변화 등 한국 사회 전반의 역사적 흐름을 조사한 팀에는 3명의 학생이 참여해 조사를 진행했다.


‘1960년 이후의 한국의 자동차’를 주제로 진행한 팀 또한 3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현대, 기아, 대우, 쌍용, 삼성자동차 등이 과거에 출신한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을 신문기사 스크랩과 책을 참고해 자료를 모았다. 단순히 신문과 서적의 자료만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동차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4명의 학생들은 ‘전문가 인터뷰’도 진행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아버지’를 조사하는 부분에서는 5명의 아버지를 선정해 각 아버지마다 2명의 학생이 붙어 총 10명의 학생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지숙 학생은 “서로의 역할은 나뉘어 있었지만 조사가 먼저 끝난 팀은 다른 팀의 리서치를 돕기도 했다”며 “조사 이후 영상제작, 전시기획, 책 편집 등을 위해 기존 팀이 해체되고 새롭게 팀이 만들어지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에서 배운 것은 ‘사고하는 방법’이라고 말한 팀원들은 교과 내용을 단순히 암기하고 숙지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과 열린 시각으로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근대의 역사적 사건들 또는 평범한 기억으로 남은 기록들이 어떠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지 재조명해보고자 했던 원동력도 이러한 열린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팀원들은 “개인의 역사, 사회의 역사, 문화의 역사 이 세 가지의 접점에서 ‘아버지의 자동차’라는 작품이 탄생했다”며 “수업의 사고 활동은 이러한 졸업 작품을 넘어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자동차’ 팀의 프로젝트는 이번 졸업전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팀원들은 이번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은 “아버지의 자동차를 제목으로 책을 출판한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출판된 책에는 졸업전시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사의 흐름, 한국 자동차 역사, 전문가 인터뷰, 아버지들의 삶으로 나뉘어 전시에서 못다 한 이야기 등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팀원들은 “대부분의 졸업전시는 주변 친구들이 와서 ‘잘했다! 고생했어! 축하해!’라는 격려와 함께 전시가 끝나면 작품들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며 “이번에 발간한 책은 이러한 허망함을 극복하는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가 지속성을 갖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고 말했다.

졸업전시를 끝으로 이들의 연구는 마무리됐으며 팀원 16명 모두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하지만 출판된 책은 서점에 남아 여러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히면서 후속연구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디자인 학과에서 시각적인 결과물이 아닌 글을 기반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이들은 “졸업전시라는 큰일을 해냈다기보다는 아버지의 자동차라는 우리만의 큰 장벽을 넘었다는 기쁨이 더 크다”며 “책을 통해 서점에서 우리 프로젝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고 말했다.

[서울와이어 김지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