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채무조정 시행 예정

[금융계보] ‘빚 청소부’ 배드뱅크…경제 회복 구세주일까, 새 논란의 불씨일까. 사진=픽사베이
[금융계보] ‘빚 청소부’ 배드뱅크…경제 회복 구세주일까, 새 논란의 불씨일까. 사진=픽사베이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정부가 오래된 연체 빚을 정리하기 위해 ‘배드뱅크(Bad Bank)’ 제도를 본격 추진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하는 배드뱅크 예산 4000억원을 포함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고, 정부는 연내 실행계획을 확정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채무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배드뱅크는 이름만 보면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회수하지 못하는 부실채권을 인수해 정리하는 ‘빚 청소부’ 역할을 한다. 회수가 어려운 채권을 은행이 배드뱅크에 넘기면, 배드뱅크는 이를 심사한 뒤 상환 능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채무를 탕감하거나 일부 조정한다.

이번에 정부가 준비 중인 제도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신용대출 113만건, 총 16조4000억원 규모를 먼저 정리 대상으로 삼는다. 일부는 아예 소각하고, 일부는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한 뒤 20년에 걸쳐 나눠 갚도록 조정할 계획이다. ‘건당 5000만 원 이하’ 기준이기 때문에 여러 건을 가진 사람일수록 실제 감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이 제도는 코로나19로 유예됐던 자영업자 대출의 만기가 내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추진된다. 당시 47조4000억원 규모의 대출이 유예됐고, 이 중 44조9000억원은 단순 만기 연장, 2조5000억원은 원리금 상환까지 유예된 상태다. 정부는 상환이 어려운 일부 취약계층의 빚을 배드뱅크를 통해 정리함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배드뱅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큰 위기마다 배드뱅크 제도를 도입해왔다. 외환위기 당시 캠코는 111조원의 부실채권을 약 35% 가격에 매입해 46조원을 회수했고, 카드대란 때는 ‘한마음금융’과 ‘희망모아’ 같은 기구가 설립돼 연체이자를 깎거나 일부 원금을 감면해 주는 방식으로 부채를 정리했다. 이후 ‘국민행복기금’, ‘새출발기금’ 등 이름만 달라졌을 뿐 기능은 유사한 제도들이 꾸준히 운영돼 왔다.

이번에는 조정 폭과 방식이 더 파격적이다. 특히 원금의 90%까지 감면이 가능하고, 최대 20년 분할 상환도 허용돼 부담이 한층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새출발기금에서 남은 예산 20조원 외에도 추경으로 4000억원, 금융기관이 부담할 4000억원을 더해 총 8000억원 규모의 초기 재원을 확보할 예정이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일부 고의 연체자나 재산을 숨긴 사람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점, 성실히 빚을 갚아온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부담 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실제로 과거 제도에서도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배드뱅크가 금융시장 안정과 취약계층 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공정하고 정밀하게 대상자를 선별하고, 악용 사례를 막아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배드뱅크가 진짜 ‘빚 청소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투명한 운영과 철저한 심사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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