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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금슬금] 주가는 오르는데 찜찜한 이유…자사주 소각이 뭐길래. 사진=픽사베이](https://cdn.seoulwire.com/news/photo/202507/660280_863410_947.jpg)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이번 주 자본시장 최대 화두는 단연 ‘자사주 소각 의무화’였다.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정치권에서 자사주 소각 관련 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자사주의 개념과 자사주 소각의 의미를 둘러싼 관심이 뜨겁게 일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자사주를 적극 매입하면서도 정작 소각보다는 처분이나 보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자사주는 기업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다시 사들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뜻한다. 장부상으로는 자본에서 차감되는 자본조정항목으로 분류되며, 주가 부양과 주주 환원, 경영권 방어 등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주식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주당순이익(EPS)을 높여 주가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 친화적인 행보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사주를 활용한 기업들의 의사결정이 반드시 주주 이익과 맞닿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국내에선 자사주가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차익 실현 목적의 매물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부 기업은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기거나 교환사채(EB) 발행 등 편법적인 수단으로 시장에 영향을 끼쳤고, 그 과정에서 일반 주주들의 권익은 희생되곤 했다. 해외에서는 자사주를 단기 보유 후 소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관련 규제가 느슨해 보유 및 처분의 자유도가 높다. 이 같은 구조에서 나온 요구가 바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이 지난 10일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논의의 분기점이 됐다. 개정안은 상장사가 자사주를 신규 취득할 경우 1년 이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하고, 기존 보유 자사주도 동일한 규정을 따르도록 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조합 출연, 전환사채 권리 행사 등 예외적 취득 사유가 있을 경우에도 매년 주주총회에서 보유 목적과 처분 계획을 승인받도록 했다. 이마저도 승인을 받지 못하면 소각해야 한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3% 이상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정치권은 이번 정기국회(9월)를 기점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 논의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자본시장 공약 중 하나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검토 중이며, 소관 상임위 및 입법 수위를 조율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법사위 소관이라 여당 단독 통과가 가능하지만, 자본시장법으로 접근할 경우 야당 동의가 필요한 정무위 통과가 관건이다.
과거 정부도 자사주 남용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으나, 적극적 입법보다는 제도 보완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는 인적분할 시 신주 배정 금지나 자발적 소각 장려, 처분 규제 강화 등을 통해 자사주 활용을 제약했다. 하지만 상법상 소각 의무 조항 자체는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이 때문에 자사주를 대량 보유한 기업이 지배력 강화를 위해 자사주를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현재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자사주 비율이 10%를 넘는 상장사는 200곳이 넘는다. 신영증권, 조광피혁, 부국증권 등 일부는 40% 이상에 달한다. 롯데지주, SK, LS, 대신증권 등 대기업들도 10% 이상의 자사주를 보유 중이며, 일부는 이를 외부 계열사에 넘기거나 EB 발행 방식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자사주를 둘러싼 개념은 명확해 보이지만, 그 활용과 효과는 복잡하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 부양과 EPS 상승 효과가 있지만, 소각 여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자사주를 처분할 경우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나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매각 시점이나 목적이 모호할 경우 투자자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사주 매입보다 소각 여부가 핵심이다. 소각은 기업이 자기 주식을 영구히 없애 시장 유통량을 줄이는 것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대표적 주주 환원 정책이다.
일각에선 자사주 소각이 반드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업의 이익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소각 자체가 단기 이벤트에 불과할 경우, 오히려 실망 매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고 기업이 주주 가치 제고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보인다는 점에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세하다. 소각 의무화 법안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해외 주요국은 자사주 활용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를 적용 중이다. 미국과 일본은 신주 발행이나 자사주 처분 시 주주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임의 처분을 방지하는 주주 구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독일은 자사주 비율이 10%를 초과할 경우 3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이다.
상법 개정안 통과 여부와 향후 입법 방향은 미지수지만, 분명한 흐름은 하나다. 자사주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제도적 요구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 부양과 경영권 방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던 자사주의 두 얼굴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제도 안에서 평가받을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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