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금슬금’은 슬기로운 금융생활의 줄임말로, 어려운 경제 용어나 금융 상식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 전달하는 코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금융 정보와 똑똑한 경제 습관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미국과 일본이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일본과의 무역 협상을 마무리했다며 상호관세를 15%로 책정하고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일본이 자동차와 트럭, 쌀을 포함한 일부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쌀에 대한 시장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기존 25% 관세에서 12.5%를 인하하고 기존 관세 2.5%를 더해 총 15%로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설명은 서로 다른 내용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석의 관점 차이다. 그 중심에는 MMA(Minimum Market Accessㆍ최소 시장접근)제도가 있다.
MMA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 당시 도입된 제도로 쌀처럼 민감한 품목에 대해 높은 관세를 유지하는 대신 일정량은 낮은 세율로 의무 수입하도록 한 국제적 약속이다.
일본은 현재 매년 약 77만톤의 외국산 쌀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다. 이는 전체 쌀 소비량의 약 8% 수준으로 주로 가공용이나 해외원조용으로 사용된다. 이 중 약 34만6000톤이 미국산이며 이번 협상을 통해 일본은 MMA 전체 물량을 미국산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쌀 수입 총량은 그대로 두고 수입처를 미국으로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시장 개방'으로 표현했고, 일본 정부는 '총량 유지'를 강조했다. 관세율 변경은 없지만 구조 변화가 있었던 만큼 양측 발언은 모두 사실이다.
일본의 이런 방식은 같은 MMA 제도를 운영 중인 한국에도 참고가 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매년 41만톤의 외국산 쌀을 수입하고 있으며 이 물량에는 5%의 낮은 관세가 적용된다.
다만 이를 초과하면 500%가 넘는 고율 관세가 붙기 때문에 사실상 총량은 고정돼 있다. 이 중 약 13만2000톤이 미국산이다. 일본처럼 전체 MMA 물량을 미국산으로 조정할 경우 총량을 유지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무역 협상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은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8월1일로 설정해 놓고 있으며 이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한 고위 인사들을 잇따라 미국에 파견하고 있다.
일본의 이번 협상은 MMA 제도를 활용해 수입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수입 구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실익을 확보한 사례다. 한국 역시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만큼 수입처 조정을 협상 카드로 삼는 방식이 전략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