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트럼프, ‘미란 보고서’ 저자 연준 이사 지명…금리 전쟁 재점화. 사진=연방준비제도이사회 페이스북
[슬금슬금] 트럼프, ‘미란 보고서’ 저자 연준 이사 지명…금리 전쟁 재점화. 사진=연방준비제도이사회 페이스북

‘슬금슬금’은 슬기로운 금융생활의 줄임말로, 어려운 경제 용어나 금융 상식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 전달하는 코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금융 정보와 똑똑한 경제 습관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새 이사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을 지명했다. 임기 5개월을 남기고 조기 사임하는 아드리아나 쿠글러 전 이사의 후임이다. 

미란은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 정책의 설계자이자, ‘미란 보고서’라는 파격적인 채무조정 구상으로 워싱턴 정가를 놀라게 한 인물이다. 이번 인선은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간 금리 인하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불붙는 신호로 해석된다.

쿠글러 전 이사는 내년 1월31일까지 임기였지만, 올가을 워싱턴 D.C. 조지타운대 교수직 복귀를 이유로 사임을 선택했다. 그는 기준금리 인하에 반대해온 대표적 ‘매파’ 인사다. 

미란은 상원 인준을 거쳐 잔여 임기 동안 이사직을 수행하게 되며, 이번 지명으로 연준 7명의 이사 중 트럼프 임명 인사는 3명이 된다. 파월 의장을 교체할 경우 과반이 트럼프 인사로 채워진다. CNBC는 “미란은 ‘파월의 적대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내 영향력 확대를 노린 것으로 분석했다.

미란은 보스턴대와 하버드대(경제학 박사)를 거쳐 헤지펀드 허드슨베이캐피털에서 수석 전략가로 활동했다. 2020년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의 선임고문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트럼프의 경제책사로 부상했다. 

연준 새 이사로 지명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연준 새 이사로 지명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그가 주목받은 계기는 2024년 11월 발표한 41쪽짜리 ‘미란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미국의 막대한 국가부채를 기존 국채 대신 ‘100년 만기 무이자 국채’로 교체하자는 내용으로, 안보 우산과 관세 혜택을 카드로 내세워 무역흑자국이 이를 매입하게 하자는 방안을 담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채무재조정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란을 지명한 배경에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는 분석이다. 첫째, 경기 부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를 낮추면 소비와 투자가 늘고, 주가와 고용이 개선된다고 본다. 특히 대중 무역전쟁과 고율 관세 정책으로 기업과 시장이 입은 타격을 금리 인하로 상쇄하려는 의도가 크다. 주식시장이 반등하고 기업 실적이 회복되면 자신의 경제 성과를 부각할 수 있다.

둘째, 국채 이자 부담 완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연방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이 연간 약 3600억 달러 늘어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4%대 중반으로, 이자 부담은 이미 국방비를 웃돌 전망이다. 금리를 낮추면 재정 여력이 확보돼 감세나 인프라 투자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다. 미란 보고서 역시 이러한 재정 압박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와 맞닿아 있다.

셋째, 달러 약세 유도다. 금리 인하는 달러 가치를 자연스럽게 낮추고, 이는 미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며 무역적자 개선에 도움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달러가 너무 강해 미국 기업이 손해 본다”고 비판해왔고, 달러 가치를 낮추는 것이 무역협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해왔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등 대미 흑자국과의 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트럼프와 파월 의장 간 ‘금리 전쟁’의 2라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유일한 문제는 Fed”라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고, 파월은 정치적 압박과 무관하게 경제 지표를 근거로 금리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사진=GPT생성
트럼프와 파월 의장 간 ‘금리 전쟁’의 2라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유일한 문제는 Fed”라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고, 파월은 정치적 압박과 무관하게 경제 지표를 근거로 금리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사진=GPT생성

이 같은 배경에서 미란 지명은 트럼프와 파월 의장 간 ‘금리 전쟁’의 2라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의 갈등은 1기 행정부 시절에도 거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유일한 문제는 Fed”라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고, 파월 의장은 경기 과열과 물가 안정을 이유로 거부했다. 파월은 정치적 압박과 무관하게 경제 지표를 근거로 금리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2기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금리 인하 요구를 강화하며 파월 후임 조기 지명 의사까지 내비쳤다. 시장은 이를 ‘Fed가 결국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달러 가치는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통화정책에 개입하면 Fed 독립성이 훼손되고 글로벌 투자자 신뢰 하락과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란이 연준에 합류해 금리 인하 기조에 힘이 실리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에도 파급이 미칠 수 있다. 미국 금리가 내려가면 원·달러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고, 이는 한국 수출기업 채산성에 영향을 준다. 반대로 달러 약세가 심해지면 원화 강세로 이어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무역흑자국 대상 무이자 국채 매입 압박’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도 미국의 직접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이번 지명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금리 정책, 재정 전략, 무역 전략이 맞물린 포석이다. ‘미란 보고서’의 저자가 연준 이사에 합류하면 금리 인하 압박은 한층 거세질 수 있고,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무역 질서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 인선이 국제금융질서의 변곡점이 될지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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