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건강 위한 심야배송 금지 요구
이커머스업계, 노조 황당한 요구에 '난색'
국회·정부에 현실·실질적 대안 논의 촉구
소비자 우려↑…"사회적 혼란 일으킬 것"

[서울와이어=고정빈 기자] 주문 다음 날 새벽까지 상품을 가져다주는 ‘새벽 배송’ 서비스를 전면 금지하자는 택배노조의 갑작스러운 주장에 이커머스업계는 물론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강 우려해 무리한 요구… "과로 예방해야"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는 지난 22일 열린 '택배 사회적대화 기구' 회의에서 택배기사 과로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오전 0~5시까지 심야 배송을 금지하고, 오전 5시 출근과 오후 3시 출근 두 개조에 주간 배송만 맡기는 것이 골자다.
택배노조는 심야 배송을 제한해 노동자의 수면시간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고 택배기사 과로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출범한 택배 사회적대화 기구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국토교통부, 택배업계와 노동조합,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택배노조는 "쿠팡과 같은 연속적인 고정 심야 노동은 생체 리듬을 파괴해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 암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는 새벽배송 자체를 전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심야배송에 따른 노동자의 과로 등 건강장애를 예방하고, 지속 가능한 배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주간·야간 배송을 오전 5시 출근조와 오후 3시 출근조로 변경해 일자리와 물량 감소가 없도록 하고 오전 5시 출근조가 긴급한 새벽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비자 극구 반대…"삶의 질 떨어진다"
소비자들은 새벽배송이 사라지면 생활 편의성이 급격히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와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발표한 ‘택배 배송 서비스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벽배송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98.9%가 향후에도 계속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64.1%는 새벽배송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새벽배송이 중단될 경우 불편이 클 것으로 꼽은 항목은 장보기(38.3%)가 가장 많았고, 이어 일상생활(28.0%), 여가생활(14.3%), 육아 및 자녀 학업지원(14.2%), 반려동물 돌봄(5.1%) 등 순이었다.
소비자와함께는 성명을 내고 "최근 언론에 보도된 택배 새벽배송 금지 논의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새벽배송은 평일에 장을 보기 어려운 어려운 맞벌이 부부, 워킹맘, 자영업자들에게 단순한 편의서비스가 아닌 생활 필수 인프라이자 공공재"라고 강조했다.
자녀를 둔 워킹맘과 맞벌이 부부들은 새벽배송을 이용해 기저귀나 생필품, 급한 학교 준비물 등을 주문하는 게 일상화됐고, 자영업자들도 새벽배송으로 식재료를 공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비자와함께 측은 "생활 필수 인프라가 된 새벽배송이 멈추면 소비자의 일상도 멈춘다"며 "새벽배송을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택배기사들의 적절한 휴식과 건강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지만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고, 소비자가 불편을 감내하게 만드는 방식이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도 "심야배송 전면 금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면 금지 피해는 소비자나 자영업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물류 종사자와 연관 사업자 등 광범위한 사회 구성원의 일상과 생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팡 등 업계 '비상'… 타격 불가피
대화 기구는 추가 논의를 거쳐 이르면 연말 합의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커머스업계의 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만약 새벽배송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면 실적 부진은 불가피해진다.
새벽배송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를 도입하며 이커머스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고 쿠팡도 역대급 실적을 매년 경신하며 성공가도를 이어오고 있다.
쿠팡은 콜드체인(저온 유통 체계) 물류센터 등 새벽 배송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수천억원, 수조원을 쏟아부었다. 앞으로도 물류체계에 더 많은 투자를 계획한 상태다. 새벽배송 물량이 91%에 달하는 컬리의 이용자 수는 300만명에 달한다.
아울러 쓱닷컴과 오아시스마켓, 네이버 등을 합친 새벽배송 이용자는 2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의 개선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소비자들의 불만도 적지 않게 나올 전망이다.
쿠팡노동조합은 입장문을 통해 "노조가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과 실상황을 외면한 채 새벽배송 금지를 제안했으나 이로 인한 고용안전과 임금보전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국회와 정부에 현실·실질적 대안을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쿠팡 정규직 배송기사로 구성된 노조는 "쿠팡 노동자들은 지난 10여년간 새벽배송을 통해 국민의 아침 밥상과 아이들의 학교 준비를 책임졌다"며 "새벽배송은 이제 국민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쿠팡 물류에는 생명과도 같은 핵심 경쟁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택배기사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야간배송 기사들은 새벽배송 기사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 혼잡이 적고 주간배송보다 수입이 더 좋다는 이유에서다.
민노총은 새벽배송 폐지에 따른 택배노동자의 수입감소에 대한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도, 소비자도 모두 이번 초강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우려만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심야 배송 야간 노동이 건강권을 해친다는 취지인 것 같다"며 "아직 부처 내에서 논의해보지는 않았지만 신중하게 검토해야 된다고 본다. 소비자 입장도 고려해야 되고 여러 가지 조건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대부분 불가능한 주장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장 새벽배송을 없애는 건 너무 과한 요구"라며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을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