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2025년 글로벌 증시는 넘치는 유동성과 금리 인하 기대, 인공지능(AI)을 포함한 기술 결합에 힘입어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랠리가 ‘안전한 펀더멘털 회복’에 기초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금리·인플레이션·정책·지정학 변수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도 급격한 재평가, 즉 하방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9월 증시가 전통적으로 약세라는 통설을 무색하게 우리 주식시장은 추석을 앞두고도 상방을 향해 달리고 있다. 미국 증시 역시 9월, 특히 중순 이후에 약하다는 인식이 강한 만큼 시장의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때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조만간 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난해 7월 달러당 162엔까지 급락했던 엔화가 올 8월 말 140엔 후반대에서 거래되면서 청산 우려가 부각됐다. 

특히 9월7일 이시바 총리의 전격 사임 이후 당장은 위험이 줄어든 듯 보이지만 일본의 높은 물가와 임금 상승에 따른 금리 인상 가능성, 그리고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맞물리면 양국 간 금리 차 축소로 캐리 트레이드 수익성이 낮아져 청산을 자극할 수 있다. 영국 다음으로 높은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이런 불확실성을 키운다. 9월 조정을 예상하며 레버리지를 줄였던 기관과 헤지펀드들이 최근의 주가 상승에 당혹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증시에 지나친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단기 상승 동력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밀어주고 있고, 연간 기준으로 순매도 기조였던 외국인도 당분간 매수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9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신중히 금리 인하 사이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고,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경기 부양책도 신흥국 증시에 긍정적 자금 흐름을 만들고 있다. 지난 10일 오라클의 호실적과 주가 상승은 AI·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와 AI 인프라 투자는 국내 증시의 구조적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정부의 시장 부양 의지도 투자 심리를 지탱하고 있다. 역사적 고점 돌파는 개인과 기관의 추가 매수를 부추기는 자기강화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밸류에이션을 봐도 이번 상승은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2021년 코스피가 3300선을 기록했을 당시 주가수익비율(PER)은 15~16배로 과도한 수준이었고, 주가순자산비율(PBR)도 1.2배를 넘어 역사적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팬데믹 이후 풀린 유동성과 개인투자자 자금이 기업 이익을 앞질러 주가를 끌어올린 ‘버블형 고점’이었다. 

반면 2025년 3400선을 돌파한 현재 PER은 10~11배 수준으로,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PBR도 1.0~1.1배 수준으로, 여전히 역사적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고점은 실적 개선이 동반된 ‘실적 기반 고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엔비디아,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설비투자는 한국 반도체 기업의 이익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이익 증가는 단기적 반짝 상승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높인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본격화되면 글로벌 자금은 신흥국·아시아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공산이 크다.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밸류에이션 매력과 외환 안정성을 동시에 갖춰 자금 유입 대상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 일본의 밸류업처럼 한국도 주주친화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해외 투자자 신뢰가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과 정책형 펀드의 주식 비중 확대 논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 강화도 긍정적이다. 제조업 중심에서 K-팝, K-뷰티, K-푸드 등 신산업 성장 스토리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투자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주가가 단기간 과도하게 오른 만큼 조정 가능성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조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긴 호흡에서 시장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로벌 유동성 전환과 중국 경기 안정이 이어진다면 유동성과 실적 장세가 맞물려 증시를 뒷받침할 수 있다. 

반면 세계 경기 침체가 현실화된다면 외부 충격도 불가피하다. 아직 그 가능성은 낮지만, 경기 부진 속에서도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은 빅테크의 호실적, 유동성 증가, 저금리 전환, 정부의 경기 부양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역사적 고점을 넘어선 지금, 중요한 것은 단기 등락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구조적 변화를 읽고 긴 안목에서 대응하는 것이다. 2025년의 고점은 단순한 버블이 아니라 실적이 받쳐주는 고점일 수 있다. 그러나 조정 가능성에 대비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시장은 언제나 기대와 우려 사이에서 움직인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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