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채·박정림 불출마로 ‘3자 구도’ 확정…대형사 표심이 승부 가를듯
서유석 연임 여부·새 정부 정책 맞물리며 업계 입장 대변 여부가 중요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금융투자협회(금투협) 차기 회장 선거가 임박하면서 구도가 사실상 ‘3파전’으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당초 출마가 거론됐던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가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현재로선 서유석 현 회장의 연임 여부를 중심으로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가 맞붙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협회가 후보 공모에 들어가면서 업계의 시선도 3인으로 모이고 있다.
◆‘잠룡’ 이탈로 3파전 압축…정영채·박정림 불출마 결정적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투협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4일부터 19일까지 제7대 회장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협회가 정회원사 투표로 회장을 선출하는 구조여서, 다른 금융 법정협회와 달리 ‘낙하산’ 변수보다는 업권 내 표 결집이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
금투협 회장 선거는 증권사·자산운용사·선물회사 등 약 400여곳의 정회원사가 참여하는 비밀투표로 치러진다. 정회원사는 증권사 61곳, 자산운용사 312곳, 선물회사 28곳으로 구성돼 있으며, 표결은 ‘1사 1표’의 균등 배분 30%와 연간 협회비 분담률에 따른 차등 배분 70%로 나뉜다.
결국 회비 규모가 큰 대형사의 표심이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회비 납부 기준과 각사 비중은 내부적으로만 관리되고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도가 3파전으로 굳어진 것은 ‘잠룡’으로 불리던 인사들의 이탈이 결정적이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는 라임펀드 사태 관련 행정소송 2심 선고가 11월 말로 미뤄지면서 “법률적 이슈를 안은 상태로 선거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1심에서 승소했더라도 사실심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마를 강행하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 역시 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소송이 남아 있는 만큼 출마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빠지자 다른 잠재 후보군을 포함해도 현실적 경쟁 구도는 세 사람으로 압축됐다.

◆황성엽·이현승, 각기 다른 비전으로 ‘정면승부’
현재 공식 출마를 선언한 인물은 두 명이다. 먼저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는 “대형사와 중소형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조율하겠다”며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다. 1987년 신영증권에 입사해 38년간 한 곳에서 근무한 ‘정통 신영맨’으로, 자산관리(WM)부터 IB까지 현업을 두루 거친 실무형 CEO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황 대표는 금융당국·국회와의 상시 정책 협의체 신설, IMA(종합투자계좌) 도입 지원, 발행어음 인가 확대, 모험자본 공급 확대, 디폴트옵션 제도 개선, 배당소득 분리과세 확대, 디지털자산 시장 진출 지원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초대형 IB뿐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운용사·신탁사·선물사 등 다양한 회원사의 이해를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도 공식 출마를 밝혔다. 행정고시(32회)로 공직을 시작해 재정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거친 뒤 메릴린치증권, SK증권, 코람코운용, KB자산운용 등 증권·운용 업계를 모두 경험한 이력으로 “민·관과 대형·중소형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금투협의 존재 이유는 회원사 성장과 가치 증대”라며 규제환경 개선, 배당소득 분리과세 확대, 디폴트옵션 실효성 제고, 디지털자산시장 활성화, 불합리한 연계제재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대형 증권사의 숙원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 확대와 IMA 도입, 중소형사의 NCR 규제 개선과 비용 절감 등 업권별 맞춤형 현안 해결을 약속했다. 황 대표와 공통분모를 보이면서도 ‘즉시 소통’과 현장 중심 협회를 강조하는 점이 차별화된다.

◆서유석 연임 카드 ‘최대 변수’…대형사 표심이 향배 가른다
남은 변수는 서유석 현 회장이다. 서 회장은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연임 도전을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2022년 말 선출 당시에도 결선 없이 65% 득표율로 당선됐으며, 자산운용사 출신 첫 협회장으로 밸류업 활성화, 디딤펀드 출시, 대체거래소(ATS) 출범,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법안 발의, STO(증권형 토큰) 법제화 등 자본시장 과제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기 말 들어 대외 일정을 줄이고 중국 빅테크 탐방 일정에 불참하는 등 선거를 의식한 행보가 포착되면서 ‘출마 시점만 조율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금투협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초대 황건호 회장을 제외하면 2대 박종수 전 회장부터 5대 나재철 전 회장까지 모두 단임으로 마무리됐다.
업계에서는 “성과가 뚜렷한 만큼 예외가 될 수 있다”는 기대론과 “관행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는 신중론이 교차하고 있다. 실제로 금투협 회장 선거는 정회원사 직접 투표로 진행되지만, 협회비 분담률에 따라 대형사 표심의 영향력이 크다. 지난 선거에서도 “서 회장이 불리하다”는 전망이 있었으나 대형사 지지로 무난히 당선된 전례가 있다.
결국 이번 선거는 단순한 회장 교체를 넘어 새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 방향과도 맞물린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에는 협회가 정책당국과 얼마나 긴밀히 소통하고, 자본시장 규제 완화·혁신 의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느냐가 핵심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증권사·운용사 사이에서도 “지난 정부 때는 금융당국이 자본시장에 깊게 개입해 협회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던 만큼 새 회장에게는 업계 자율성을 되찾고 현장 규제를 완화할 ‘실무 조율형’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금투협은 후보추천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를 정회원사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표 구조와 업권 연합, 현직 회장의 출마 여부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선거는 마지막까지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구도로 전개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