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서울시 조례 합법 판결 후 고층개발 논란 격화
세계유산법 첫 시험대… 보존·개발 갈등 장기화 전망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 7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 완화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10일 서울 종묘를 찾아 전경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 7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 완화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10일 서울 종묘를 찾아 전경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안채영 기자] 서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이 ‘법적 합법성’과 ‘세계유산 보존 의무’ 사이의 충돌로 번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고층 개발‘에 제동이 풀리자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반발하고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제동에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김 총리는 이날 허민 국가유산청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과 함께 서울 종묘 일대를 직접 점검하고, 관계부처에 법과 제도 보완 방안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울시는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세운4구역 건물 높이 상한을 145m(41층 규모)까지 상향하는 내용의 고시를 발표했다. 해당 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17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서울시는 문화재 보호구역 밖에 위치해 법적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법원도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상위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 등재국의 의무에 따라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실시해야 한다”며 유네스코의 보존 원칙을 강조했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주변 경관 훼손을 이유로 영국 리버풀, 오스트리아 빈 등 세계유산 지위를 박탈한 전례가 있어 업계에서는 서울 종묘도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사안은 지난해 시행된 ‘세계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세계유산법)’의 첫 실효성 시험대로 꼽힌다. 해당 법은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영향을 미치는 개발사업의 경우 영향평가를 의무화했지만, 구체적 대상 범위가 명시되지 않아 세운4구역이 적용 대상에 포함될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대법원 판결로 국가유산청이 종묘 인근 고층개발을 법적으로 제지할 근거는 사실상 사라졌다. 현행 문화유산법은 보존지역(100m 내) 내 개발만 심의를 의무화하고 있어 보호구역 밖에 있는 세운4구역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가유산청이 건설사 등 상대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2021년 세계유산인 경기 김포 장릉 인근 고층 아파트 소송에서 패소한 전례를 고려하면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다만 국제사회와의 문화유산 보존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서울시의 개발논리와 국가유산청의 보존원칙이 충돌하면서 세운4구역 문제는 앞으로 서울시의 개발정책과 세계유산 관리체계 전반에 중대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종묘가 선례가 되면 서울의 다른 유적지 주변에도 무분별한 고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고도 제한을 완화한다고 세계유산 지위가 즉각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실제 개발이 세계유산 경관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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