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탄약 체계 겨냥한 공급망 전략
폴란드 인증 추진… 생산 생태계 확장
2027년 한·미·EU 삼각 생산 체제 완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 전경(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 전경(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탄약을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삼는 전략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 유럽 탄약 태스크포스(TF) 임원급 격상, 폴란드 연구기관과의 품질 인증 협력, 미국·유럽 생산 거점 검토 등 세계 탄약시장의 동반 붕괴 속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 개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 촉발된 탄약 부족 문제는 이제 지역 이슈가 아닌 유럽연합(NATO) 전체의 전략 물자 문제로 부상했다. 각국이 국방예산을 키우고 있음에도 탄약 생산 기반이 붕괴된 탓에 시장은 ‘수요 폭증–공급 공백’이라는 전례 없는 불균형을 겪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공백을 플랫폼 수출이 아닌 공급망 구축의 기회로 내다봤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PGM사업부 산하 폴란드·독일 TF의 책임자를 임원급으로 대폭 격상했다. 폴란드는 대규모 K-방산 고객국이자 유럽 내 탄약 수요가 가장 높은 국가이고, 독일은 라인메탈 등 방산 거점 기업이 존재하는 핵심 시장이다. 

여기에 현지 품질인증 체계 구축도 속도가 붙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4일(현지시간) 폴란드 군사기술무기연구소(WITU)와 155㎜ 탄약 구성품의 품질 인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WITU는 폴란드 국방부 산하 기관으로 NATO 기준에 맞춘 탄약 테스트와 평가를 담당한다. 이 협력은 한화의 모듈화 장약(MCS)을 유럽 표준 체계에 편입시키는 ‘인증권 확보’ 단계로 해석된다. 폴란드를 시작으로 유럽 각국이 한화산 장약·탄약의 품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생산 기반도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 확장된다. 지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MCS 법인의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리고 유럽 내 MCS 생산 기지도 신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향상된 GPS가 탑재될 천무 유도미사일.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향상된 GPS가 탑재될 천무 유도미사일.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증설 시점은 모두 2027년 전후다. 같은 해 폴란드에서 천무 유도탄 현지 생산도 본격화된다. 결과적으로 2027년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유럽–한국을 삼각으로 묶는 글로벌 탄약 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는 전 지구적 공급망 네트워크가 완성되는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이 시스템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생산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탄약은 완제품과 달리 물류비 비중이 높고 국가별 표준이 엄격하며 수급이 불안정한 품목이기 때문에 ‘현지 인증–현지 생산–장기 계약’이 결합된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갖는다. 한화가 유럽 TF 재편, 인증 협력, 생산기지 확충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공급망을 잡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협력사 생태계 확장도 한화의 새로운 전략 중 하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협력사 33곳과 함께 폴란드 MSPO 전시회와 국영 방산기업 HSW를 방문하는 글로벌 벤치마킹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는 국내 협력사를 유럽 공급망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시도로 평가된다. 한국식 방산 제조 모델을 유럽으로 확장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이미 확보한 K9·천무 플랫폼 수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탄약·장약·유도탄까지 아우르는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면 유럽시장 전체를 사실상 하나의 생태계로 엮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략은 ‘무기 수출 기업’에서 ‘탄약 공급망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이다. 이는 글로벌 안보지형의 변화 속에서 한국이 공급망 중심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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