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 낮은 장비 공급망리스크 큰 상황, 경제 타격 전망
올 상반기 특정 국가 수입액 품목 75%, 중국 의존도 높아
소부장 자립 멀었다… "공급망 체계 구축 등 지원 필요해"
정부, 핵심 전략기술 확대… "변수 줄고 비용 절감 기대돼"

한국 기업이 해외 각국의 규제로 발목이 잡혔다. 미국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이 제동을 걸었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벅차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2023년 계묘년을 맞아 해외 진출 제조업의 돌파구와 정부의 역할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고정빈 기자] 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이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분야에서 국산화를 추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정부가 소부장 핵심기술분야를 확대되면서 앞으로 해외 수입 의존도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핵심 부품 국산화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시장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소부장 수입국 의존도↑… "공급망 개편 시급하다"
1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11월 산학협동재단과 공동으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분석·대응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신성호 동아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 상위 10대 수입국이 반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87.6%에서 지난해 상반기 93.7%로 높아졌다. 부품은 83.5%에서 91.0%, 반도체 장비는 88.9%에서 96.6%로 확대됐다.
특히 네덜란드 수입에 100% 의존하는 노광 장비와 미국과 일본 수입에 각각 70.8%와 25.5%를 기대는 이온주입기 등 국산화가 낮은 장비의 공급망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식각 장비도 미국에서 53.7%, 일본에서 35.5%를 수입했고 증착 장비는 61.0%가 싱가포르에서 수입됐다.
신 교수팀은 “반도체 소·부·장은 단기적으로 국산화가 어렵다”며 “공급망 유연성에 집중하는 한편 각 공급망 연결고리에 대한 공급망 지도화(mapping)를 통해 공급망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영진 동아대 교수팀은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미국 뉴욕 연준이 개발한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GSCPI)를 통해 진단했다. 이들은 글로벌 공급망 충격은 단기적으로 우리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국내 물가도 9개월 동안 상승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대중에 익숙해진 소부장은 ‘원자재-중간재-완제품’ 생산 구조에서 ‘중간재’에 해당하며 완성품 성패와 부가가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정부의 일본 수출규제 대응으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줄었으나 중국에 대한 의존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부에서 제출받은 ‘2022년 상반기 특정국 의존 품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1000만달러(133억원) 이상 수입품 중 특정 국가 수입액이 75% 이상인 품목은 총 636개로 집계됐다. 국가별 수입 의존도를 보면 중국이 전체의 55.2%인 351개로 가장 많았다. 일본(83개·13.1%)과 미국(49개·7.7%), 베트남(20개·3.1%) 등이 뒤를 이었다.
자동차 배터리 핵심 소재와 반도체 장비 소부장 품목을 보면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코발트망간 산화물의 리튬염은 상반기 11억6540만달러 품목이 수입됐는데 이 중 97%가 중국에서 들어왔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산화코발트의 수입액은 9160만달러로 89%가 중국에서 수입됐다. 인조흑연(91%)과 수산화리튬(83%)도 중국 의존도가 높았다.
김 의원은 “아직 소부장 자립은 멀다. 수입 다변화 등 공급망 체계 구축과 소부장 국산화를 위한 지원에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확대, 정부 '적극 지원' 약속
이처럼 해외 소부장 수입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사실이 확인한 정부가 해결에 나섰다. 산업부는 지난해 10월 ‘제10차 소부장 경쟁력강회위원회’를 개최하고 새 정부의 소부장산업 정책방향과 안건을 논의‧확정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 개최된 위원회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 중국간 기술패권 경쟁 심화 등 대내외 여건 변화에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산업부는 소부장 구조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지금까지 일본 수출규제 대응에 집중했던 소부장 정책을 넘어 앞으로 가속화하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 중심의 소부장 정책을 줄이고 국산화에 나서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일본 대응 소부장정책은 어느정도 성과를 달성했다. 소부장에 대한 일본 의존도는 역대 최소(지난해 상반기 기준‧15.4%)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9.6까지 올랐다. 산업부는 결국 일본이 아니라 해외 수입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산업부는 정책을 개편해 일본 수출규제 대응과 주력산업 중심으로 구성됐던 100대 핵심전략기술을 대세계 공급망‧미래첨단산업까지 고려해 150개로 확대‧개편했다. 아울러 공급망 종합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소부장 산업 글로벌화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2020년 선정된 100개 핵심전략기술이 150개로 늘어나면서 확대된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와 세제, 규제 패스트트랙, 으뜸기업 선정 등을 집중 지원할 예정이다. 미래산업 분야 R&D 비중도 높여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소부장 개편안에 따르면 기존 기술 100개 중 13개가 삭제되고 신규기술 63개가 추가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반도체 17개→32개 ▲디스플레이 10개→14개 ▲자동차 13개→15개 ▲기계금속 38개→44개 ▲전기전자 18개→28개 ▲기초화학 4개→15개 ▲바이오 0개→5개 등으로 증가한다.
위기 대응력 강화를 위한 종합지원체계도 구축한다. 정부는 ‘소부장특별법’을 개정해 공급망 정보분석, 리스크 관리 등 산업 부문 공급망 안정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급망 안정품목을 신설해 국내산업과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원소재‧범용풍도 집중 관리한다.
코트라·무역협회·수입기업 등 가용하는 외국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위기 징후 파악·대응을 위한 조기경보시스템 운영 ·고도화도 추진된다. 결국 그간의 국내 수요-공급기업 중심의 협력사업을 넘어 해외 수요-국내 공급기업간 공동 R&D 협력범위까지 확대해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한 과제는 무역금융·인증 등 글로벌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소부장 공급망 확보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생각한다”며 “새정부 정책방향을 바탕으로 요소와 같은 범용품·원소재를 포함한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 구축하겠다. 소부장 글로벌화 전략 수립 등 후속조치도 차질없이 실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소부장 국산화는 어떤 정부에서든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부분이다. 국산화가 성공화되면 일본 등 다른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소부장 국산화를 도모하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변수가 줄어들 것이다.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부담이 낮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