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와이어 김종현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돈줄이었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맥없이 붕괴하면서 고금리에 노출된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금융시스템 어디선가 옆구리가 터질 것이라는 시장 일각의 우려가 SVB 파산으로 현실화했다.
12일 미 CNN방송과 CNBC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SVB가 고객들의 뱅크런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SVB는 미국에서 16번째 규모 은행으로 전체 금융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하지만 금융시스템에서 가장 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은행'이 문제가 불거진 불과 며칠만에 파산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SVB의 붕괴는 미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려 조달 금리가 치솟는 상황에서 보유자산인 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바람에 고객인 스타트업기업들의 자금 인출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고금리로 벤처캐피털이 막혀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이 다투어 예금 인출에 나섰지만 채권투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SVB의 금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속수무책에 몰렸다.
SVB는 자금 확보로 급한불을 끄기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하고, 신주발행으로 22억5000만달러를 조달하려 했으나 이게 맡긴 돈을 떼일수 있다는 고객들의 패닉을 불러 뱅크런을 가중시켰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채매각으로 18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불안은 증폭됐다.
SVB의 파산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몰고왔다. 은행주가 폭락하고, 부동산 관련주도 급락했다. 주간 기준으로 다우 지수는 4.4%, S&P 500 지수는 4.6%, 나스닥 지수는 4.7% 각각 추락했다. 다우 지수는 작년 6월 이후, S&P 500 지수는 작년 9월 이후 각각 최대폭 주간 하락이다
유럽에서는 10일 범유럽지수인 STOXX 600 지수가 1.35% 하락했고 독일 DAX지수는 1.31%, 영국의 FTSE100지수는 1.67% 각각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악몽을 재현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미 재무부의 윌리 아데예모 차관은 "전체 금융시스템의 규모와 다양화를 고려할때 시스템의 능력과 회복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사태를 수습하는데 필요한 수단도 있다"고 말했다.
재무전문가인 런던 킹스칼리지의 젠스 하겐도르프 교수는 "전체 은행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여서 상당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다"면서 "SVB의 경우 변덕스러운 특정 예금자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특별하다"고 했다.
웰스파고의 수석 은행분석가인 마이크 메이요는 "2008 금융위기와는 대조된다. 당시 은행들은 과도한 위험을 안고 있었지만 지금 은행들은 그 당시보다 탄력적이고 건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외환중개업체인 오안다의 수석분석가인 에드워드 모야는 "이번 사태가 금융시스템에 광범위한 전염가능성은 낮지만 기술기업이나 가상화폐 업계처럼 자금난에 시달리는 부문에 엮여있는 소규모 은행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애크먼은 SVB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파산한 베어스턴스에 비유하면서 "이는 자본이 가장 취약한 다른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지는 도미노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금융시스템의 경우 이미 부동산 PF 등 부동산관련 금융에 문제가 발생한 상태여서 주의가 필요하다. 금리가 추가로 오를 경우 세계 최악 수준인 가계대출, 특히 부동산담보대출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주택 등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경우 은행이나 저축은행의 부동산 대출 부실을 불러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흔들 수 있다.
한편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의하면 작년말 현재 SVB의 총자산은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다. 자산 규모가 예금을 초과해 정상적이라면 고객들이 예금을 보호받을 수 있지만 자산 매각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일부 예금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현재 SVB 고객 가운데 예금보호한도(25만 달러)를 초과한 고객의 예금규모는 1515억 달러로 추정된다. 고객 대부분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기업이 자금난으로 줄도산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