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열하면서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두 나라의 갈등 심화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세계의 많은 정치외교 전문가는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패권국이 2인자의 도전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결국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파국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패권경쟁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쟁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지만 안보와 외교, 경제에서 두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일반적이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센카쿠열도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충돌한 2010년, 중국에서 시진핑이 집권한 2013년을 기점으로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운 중국의 야심이 노골화했고,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의 응전이 본격화했다.
갈등은 전방위적이다. 관세,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남태평양, 대만 문제에서 대립은 첨예해지고 있다. 미국은 안보와 직결된 반도체 등 핵심산업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한 채 동맹국이나 우방들과 판을 다시 짜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중 갈등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치' 전쟁이다. 가치가 사고를 지배하면 전략적 판단 대신 옮고 그름,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 되어 접점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는 대한민국에 크나큰 리스크가 아닐수 없다. 국가의 토대인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어느쪽도 포기할 수 없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3%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자 핵무장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북한의 뒷배가 되고 있다. 미국은 우리 안보에 없어선 안될 동맹국이자 민주주의의 보루이며, 2위 교역국이다. 미중의 긴장은 우리에게 '낭만적 안미경중(安美經中)'의 공간을 주지않고 선택을 하라고 강요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답을 구하고자 종합인터넷 매체인 서울와이어는 19일 '차이나 쇼크, 대한민국의 생존을 묻는다'는 주제로 혁신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선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통상부 장관)은 "미중 충돌 속에서 세계의 정치·경제가 양분돼가는 사이 한국의 안보상황은 위험에 빠졌고, 경제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이사장은 경제의 경우 "한국의 전략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때로는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고 있다"면서 "이제는 중국 경제발전 과정에 편승할 때가 아니고 새로운 세계경쟁 구도에 환승해야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생존을 위한 한국의 기초자산은 자강력이며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확대하는 것"이라면서 "한미동맹이 가치·군사동맹에서 기술동맹으로 발전돼감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전략공간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퇴로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새겨들어야할 말이다. 경제적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서는 중장기 계획하에 주도면밀하게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안보 경제 연대를 굳건히 하되 일방적으로 끌려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세계 7위권의 국력과 지경학적 환경을 이용해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미국이 동맹이긴 하지만 영원한 패권국일 수 없고, 우리 안보와 경제의 '라스트 리조트(Last resort)'일수도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결속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정 부분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웅변하듯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엇도 국익과 실리를 우선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날 포럼 주제강연자로 나선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견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 선임연구원은 "지정학적인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중 경제협력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면서 "하지만 세상에 포기해도 되는 시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때일수록 중국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중국이 이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중국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사업위험을 피할수 없다면 그것을 관리하는 기준점도 만들어야 한다"면서 "리스크는 아는만큼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을 미국이나 일본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이성적으로 주시해야 한다. 협력할 부분은 과감히 협력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노(NO)'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80%가 중국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런 감성적 접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은 운명적 이웃이자, 대체불가의 경제 동반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정부와 학계를 비롯한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흔들리지 않을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국가 차원의 대(對) 중국 전략이 시급하다.
김종현 본사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