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를 공언한 바 있다.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의 폐지가 그가 말한 대로 시행될지 우리 정부를 비롯해 여러 국가가 주목하고 있다. 새해 들어 우리 자동차 업계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현지 현대자동차와 기아차가 생산하는 전기차가 미국 정부 보조금 대상에 포함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취임 이전에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미국 현대차·기아 모델이 IRA 보조금 지급 명단에 처음으로 들어간 것이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5종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면 전기차 수익성이 올라간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소비자에게 보조금 액수만큼 할인해 줬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다행이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일론 머스크는 IRA 보조금을 폐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이 제도가 시행되는 데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고 시간도 상당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적 관세와 미국산 제품 우대 조치가 우리 기업의 수출 제품 가격을 상승시켜 미국 시장에서 미국산 제품과의 경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면은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인 한국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는 있다. 한국 기업은 가격 정책을 재검토하거나 미국 현지에서 직접 제조하여 판매하는 방안을 더욱 적극 검토해야 할 운명일 수 있다. 그럼에도 관련 몇 가지 이슈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사안이라고 하겠다.

첫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을 캘리포니아 주 등 미국 주 정부가 따를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IRA 시행에 불확실성이 미국 자체에서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주지사는 차기 미 행정부가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를 없애면 캘리포니아가 과거 시행한 친환경 차 환급 제도의 재도입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에서 전기차가 가장 많은 도시 5개가 모두 캘리포니아에 있다. 현대·기아차는 캘리포니아에서 승승장구해 왔다. 공화당 트럼프 당선인과의 선명성 대결을 위해서도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 여러 국가가 주지사의 결의는 확고해 보인다. 미국은 국내 자동차 수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다. 미국 수출량이 절반 수준이다.

둘째, 요세프 샤피로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 펠릭스 틴텔노트 듀크대 교수의 전기차 수요 감소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IRA에 근거한 전기차 세액공제가 폐지되면 전기차 수요가 27%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했다.

세액공제가 사라지면 미국 내 연간 전기차 등록 대수가 세액공제가 유지될 때와 비교해 31만7000대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 차량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이 작아 세액공제 폐지가 내연기관차 판매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IRA 축소 이전에 전기차 구매를 서두르려는 소비자 욕구 등이 작용해서 전기차 수요는 오히려 올해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보고서를 통해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151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예상 판매량인 1160만대 대비 29.9% 증가한 수치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3.2%에서 2025년 16.7%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25년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편 관세 적용이 예고되어 불확실성이 가중되었다. 이 정책을 즉각 시행할 수 없다면 불확실성하에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무역 둔화와 보복 조치로 생산 환경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셋째, 유럽의 정책과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는 우리 전기자동차와 관련 이차전지 산업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EU는 2025년부터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체 판매량 중 최소 20%를 전기차로 채우도록 요구할 전망이다. 이를 어기면 최대 150억 유로(약 22조 7500억 원)의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유럽의 전기차 판매 비중이 13%에 머물러 있어 업계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말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최대 45.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유럽연합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5년간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반보조금 조사를 마무리했다. 중국 배터리 전기자동차 가치 사슬이 불공정한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유럽연합의 생산업체가 경제적 피해를 볼 우려가 있기에 취한 조치다.

최종 관세율은 모든 전기차에 적용되는 기존 일반 관세율 10%에 7.8~35.3%포인트가 더해져 부과되었다. 테슬라(17.8%), 비야디(BYD, 27.0%), 지리자동차(28.8%), 상하이 자동차(45.3%) 등이 관세 부과의 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를 유럽으로 수출하지 않기에,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2024년은 다소 부진했지만 2025년은 우리 전기차 유럽 수출에 청신호가 켜지면 좋겠다. 현대차그룹은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 '유로 7' 시행을 앞두고 신형 코나를 올 11월부터 양산하려 한다. 향후 차종 확대로 판매 증가를 노리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넷째, 중기적으로 화석연료와 친환경 차에 비 호감인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전기차 산업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 변화가 전기차 충전 시장 같은 인프라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다. 그런 불확실성이 커지면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장기화로 충전 시장 성장세도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기차 충전 업계는 트럼프 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이미 설정된 보조금과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설정된 보조금이 당분간 적용된다는 면이다. 트럼프 정부가 일부 지원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2~3년 동안은 충전 등 매출에서 큰 타격이 없을 수도 있다.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전기차 충전 시장이 2023년 2조원 규모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약 50% 성장해 22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섯째, 테러, 마약, 불법이민, 인신매매와의 전쟁에 임하는 트럼프 2기 정부는 멕시코산 수입품에 관세 25%를 물리겠다고 공언했다. 이 정책이 현대자동차·기아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쟁 업체들이 훨씬 더 많은 멕시코산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멕시코 생산량이 많은 ‘빅3’는 미국·멕시코·캐나다 등이 맺은 무역협정(USMCA)에 따라 인건비가 싼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의 무관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생산거점을 이곳에 마련했다. 제너럴모터스, 닛산, 포드, 폭스바겐, 마쓰다, BMW 등 많은 회사가 멕시코 공장을 미국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물론 우리 기업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려 국가(entity of concern)가 아닌 나라들과 협력하여 트럼프 정부와 협상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이차전지 업종의 주가 상승이 있었다. 트럼프 당선에 따른 악재가 선제적으로 반영되었고 전기차 생산 및 판매가 늘 수 있다는 리포트의 효과도 주가 상승에 한몫했다. 가격이 충분히 내려온 만큼 악재에는 무디고 호재에는 좋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은 것이 아닌가 하는 설렘이 있다면 지나친 사치일까?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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