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메이드, 중국 킹넷과 로열티 분쟁…“IP 쓰고 돈은 안줘“
킹넷, 중국서 채무 나몰라라…한국서 버젓이 정상영업

[서울와이어 서동민 기자] “5000억원이 없어도 위메이드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라서,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그 태도 자체가 문제예요.”
판교 위메이드 본사 회의실. 굳은 표정의 관계자 A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깊은 숨을 몰아쉰 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말투엔 억울함과 분노가, 어조에는 한참을 눌러온 감정이 배어 있었다.
문제의 상대는 중국 게임사 킹넷(Kingnet). 과거 ‘미르의 전설2’ IP로 중국 시장을 함께 공략한 동반자였지만, 지금은 위메이드가 국제중재소와 중국 법원까지 동원해가며 싸우는 가장 골치 아픈 상대다.
◆‘미르의 전설2’로 성공한 중국 게임사…로열티 요구엔 배짱
킹넷은 2008년 설립된 상하이 기반 게임사다. 2016년 위메이드와 ‘미르의 전설2’ IP 계약을 맺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에서 여러 게임을 출시하며 몸집을 불렸다. 중국에서 '국민게임'으로 통하는 미르2 덕에 킹넷은 폭풍 성장을 이뤘고 2025년 4월 기준 시가총액 약 6600억 원으로 중국 본토 상장 게임사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엔 로열티 한 푼 지급하지 않은 검은 이면이 있었다.
위메이드는 ‘미르의전설2’ IP를 관리하는 특수목적법인 ‘전기아이피’를 통해 중국 게임사들과 계약을 맺고 로열티를 받아왔다. 2016년 체결된 절강환유(浙江幻游)와의 계약도 그 중 하나였다.
문제는 절강환유가 ‘미르의전설2’를 기반으로 한 게임 ‘남월전기’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도 위메이드에는 단 한 푼의 로열티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절강환유의 지분 100%를 가진 회사는 다름 아닌 킹넷의 자회사, 상하이 킹넷(Shanghai Kingnet)이다.
위메이드는 싱가포르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했고, 승소했다. 배상금 4억8000만 위안(약 960억원)과 연 6%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중국 법원도 강제집행을 허가했다.
하지만 위메이드는 여전히 돈을 받지 못했다. 절강환유가 이미 수익을 다 외부로 빼돌린 후 유령 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위메이드는 상하이 킹넷을 상대로 ‘법인격 부인 소송’을 제기해 “두 회사는 실질적으로 동일하며, 상하이 킹넷이 채무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국 법원의 판결까지 얻어냈다. 하지만 상하이 킹넷 측은 법원에 지속적인 이의 제기와 노골적인 집행 방해로 여전히 책임을 회피 중이다.
A씨는 “수년간 이어진 법적 싸움 끝에 어렵게 얻은 승소조차 실질적인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중국 특유의 인맥문화, ‘꽌시(关系)’가 작동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 ‘지우링’ 사건도 반복…더 교활해진 킹넷의 대응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중국 게임사 지우링은 2017년 위메이드와 ‘미르의 전설2’ IP 계약을 맺고 ‘전기래료’, ‘용성전가’ 등의 게임을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초기엔 꼬박꼬박 로열티를 냈지만, 상하이 킹넷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 돌변했다. 킹넷과 한 통 속이 된 지우링으로부터 위메이드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절강환유로 한 차례 교훈을 얻은 상하이 킹넷은 지우링의 지분 70%만 확보하는 꼼수를 썼다. 이번엔 법인격 부인 소송조차 제기하지 못했다.
A씨는 “중국에 있는 많은 게임사들과 계약했지만, 이런 식으로 버티고 돈을 안 주는 회사는 킹넷이 유일하다”며 “킹넷이 지금 이렇게 성장한 데는 위메이드 덕이 컸는데, 정작 지금은 배신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길 끝내 거부했다. 중국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보복이 두려워서다. 실제로 장현국 전 위메이드 대표는 재직 시절 ‘미르의전설2’ IP 무단 사용과 관련해 중국에 여러 차례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때마다 ‘중국에 오면 몸 조심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우린 버텼지만, 영세 게임사였으면 망했을 것”
위메이드가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한중 의원 외교 채널인 한중의원연맹을 통해 국회에 호소했고,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통해 문체부 등 정부 부처에도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A씨는 “중국 시장에서 IP 보호가 제대로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가 책임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국 정부도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아직 없다. A씨는 “정부에 불만은 없다”면서도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규모가 있으니 그나마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작은 개발사였으면 이런 일 겪고 이미 문 닫았을 겁니다. 실제로 중국 때문에 망한 곳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는 “우리가 지금 총대를 메고 싸우는 이유는 우리만을 위한 게 아니다”라며 “게임업계 전체를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킹넷은 한국 게임 시장에 진출해 활발히 영업 중이다. ‘오버로드: 나자릭의 왕’, ‘엉망 특공대’ 등 모바일 게임을 선보이며 아무런 제한 없이 수익을 내고 있다.
A씨는 나지막이 말했다. “한한령 때문에 우리는 몇 년 동안 중국에서 사업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런데 우리한테 돈 안 주고 버티는 회사가 한국에선 버젓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 그게 가장 화가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