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도중 다중 시스템 고장…179명 사망
유족들 "설계·제조 단계부터 결함" 주장
보잉, 美 법원서 또다시 법정 공방 직면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사고 여객기 꼬리 날개에 방수포가 덮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사고 여객기 꼬리 날개에 방수포가 덮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179명 희생자를 낸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그 유족들이 미국 보잉(Boeing)을 상대로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사고 항공기가 설계·제조 단계부터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원고 측 보잉 항공기 '결함' 주장

현지시간 2일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미국 보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미국 일리노이 북부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사진=일리노이 북부 지방법원
현지시간 2일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미국 보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미국 일리노이 북부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사진=일리노이 북부 지방법원

현지시간 2일 미국 일리노이주(州) 북부 지방법원에 따르면 고(故) 박모 씨의 특별관리인 이모 씨와 고 이모 씨의 특별관리인 강모 씨, 고 김모 씨의 자녀 김모 씨가 보잉을 상대로 사고기의 설계·제조 단계부터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세 건의 소송은 모두 시카고 소재 와이즈너 로펌의 플로이드 와이즈너 변호사가 법정대리인을 맡았다.

소장에 따르면 유족들은 결함 항목으로 ▲이중 엔진 고장 가능성 ▲전기·유압 시스템과 보조동력장치(APU), 발전기의 동시 고장 위험 ▲착륙장치 미전개 및 경고 장치 부재 ▲브레이크·추력역전기·플랩·스포일러·러더 등 주요 제어 장치의 오작동 가능성 ▲비상 전원 장치(RAM Air Turbine) 미탑재 ▲매뉴얼·운영 지침의 부실 등을 문제 삼았다.

유족 측은 이러한 결함으로 인해 항공기가 착륙 과정에서 사실상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활주로에서 멈추거나 방향을 틀 수 없는 상태로 장애물과 충돌해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제주항공 방콕-무안편 참사

사고 항공기는 보잉이 제작한 737-800 기종(등록 HL8088)으로, 2009년 생산된 항공기다. 제주항공은 이를 운용하며 지난해 말 방콕에서 무안으로 향하는 7C2216편에 투입했다. 그러나 착륙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졌다.

원고 측이 제출한 소송장에 따르면 항공기는 활주로 1번으로 접근하던 중 엔진 이상이 발생했고 승무원들은 반대편 활주로(19번)로 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회항 기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엔진뿐 아니라 유압, 전기, 보조동력장치(APU), 발전기 등 주요 시스템이 동시에 고장 나며 기체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착륙장치는 전개되지 않았고 착륙 후에도 브레이크·추력역전기·플랩·스포일러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러더(방향타)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서 항공기는 활주로 끝 장애물과 충돌해 결국 폭발로 이어졌다.

당시 항공기에는 181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했으며, 2명을 제외한 179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 저비용항공사(LCC) 사상 최악의 대형 인명피해로 기록된 이 사고는 국내외 항공업계와 규제 당국에 큰 충격을 안겼다.

손해배상 청구…법정공방 본격화

제주항공 7C2216편 추락 관련 소송장에 기재된 보잉 항공기 결함 항목. 엔진·유압·전기 등 주요 시스템의 동시 고장 가능성과 RAM Air Turbine 부재 등이 명시돼 있다. 사진=일리노이 북부 지방법원
제주항공 7C2216편 추락 관련 소송장에 기재된 보잉 항공기 결함 항목. 엔진·유압·전기 등 주요 시스템의 동시 고장 가능성과 RAM Air Turbine 부재 등이 명시돼 있다. 사진=일리노이 북부 지방법원

세 건의 소송은 모두 제품책임과 과실에 따른 위법한 사망을 청구 원인으로 한다. 유족들은 보잉이 합리적인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결함이 있는 항공기를 설계·제조·판매해 대형 참사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소장에는 보잉이 과거 미국 법무부와 맺었던 합의 이력까지 언급됐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7만5000달러 이상으로 기재됐다. 이는 미국 법원의 민사소송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최소 금액일 뿐, 실제 재판에서는 수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원고 측은 “유족들은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 가족 돌봄 상실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는 소송 제기 단계에 불과해 본안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관할권 판단, 소송 기각 여부, 증거 제출 명령 등 절차적 결정이 먼저 진행될 전망이다. 보잉 측 공식 입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미 737 MAX 기종 사고와 법무부 합의 이력으로 신뢰성 논란을 겪고 있는 보잉이 또다시 법정 공방에 휘말리면서 글로벌 항공산업 전반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유족 측 법정대리인인 와이즈너 관계자는 “미국 소송과 관련해 현지 상속재단을 10개 설립했으며, 보잉을 상대로 10여명 이상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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