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다 이윤 강조한 기업문화 지적
조류 충돌 이후 모든 시스템 연쇄 고장
"진실 밝힐것"… 미국 법정서 정의 다툼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사고 여객기 꼬리 날개에 방수포가 덮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사고 여객기 꼬리 날개에 방수포가 덮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제주항공 2216편 추락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미국 법정에서 보잉(Boeing)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4명으로 구성된 유족단은 14일(현지시간) 시애틀의 항공사건 전문 로펌 허만 로그룹(Herrmann Law Group)을 통해 미국 워싱턴주 킹카운티 상급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유족 측은 “보잉이 1960년대 설계된 낡은 전기 및 유압 시스템을 현대화하지 않아 조종사들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수석 변호사 찰스 허만(Charles Herrmann)은 “보잉이 이번 사고에서도 조종사 탓으로 돌리는 낡고 진부한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며 “조종사들은 승객과 함께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로, 스스로를 변호할 수도 없는 희생자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며 “한국에서 보잉의 책임을 묻지 못한 유족들이 이제 미국 법정에서 진실을 강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송장에는 보잉의 안전 우선 문화가 쇠퇴한 배경으로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 인수를 지목했다. 당시 최고경영자(CEO) 해리 스톤사이퍼(Harry Stonecipher)가 보잉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취임하며 “보잉은 위대한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체로 운영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허만 측은 “이는 보잉이 엔지니어링 중심 전통에서 이윤 중심 경영으로 전환된 순간”이라며 “2001년 본사를 워싱턴주에서 시카고로 옮긴 결정은 경영진이 현장 엔지니어들과 멀어진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에는 보잉이 1968년 첫 737기부터 2009년 제작된 사고 항공기까지 핵심 전기·유압 구조를 현대화하지 않았다고 명시됐다. 이 기간 동안 신뢰할 수 있는 백업 시스템이나 안전 장치의 근본적 업그레이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또 사고기의 착륙 직전 조류 충돌(bird strike) 이후 모든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고장났다고 밝혔다. 비행 중 좌측 엔진이 정지하고, 우측 엔진은 추력이 55%까지 떨어졌다. 

허만 변호사는 “미 연방규정(14 C.F.R. §33.76)에 따르면 엔진은 새 4마리를 흡입해도 75% 추력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번 충돌로 시스템 전체가 붕괴됐다”고 설명했다.

전기 발전기는 교류 전력을 생산하지 못했고 배터리 백업 전원도 작동에 실패했다. 전기 버스 크로스타이(연결장치)는 반응하지 않아 비행기 데이터 기록 장치(FDR),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CVR), 트랜스폰더가 모두 동시에 멈췄다. 착륙 중 감속에 필요한 랜딩기어, 리버스 스러스터(역추진 장치), 플랩, 슬랫, 스포일러 등이 전개되지 않아 조종사들이 정상적인 제동을 수행할 수 없었다.

허만 변호사는 “이 숙련된 조종사들은 간신히 활주로로 복귀했지만 모든 시스템이 무력화돼 착륙 수단을 박탈당했다”고 밝혔다. 항공기는 2600m 활주로 중 약 1200m 지점에 시속 175마일(약 280㎞/h) 속도로 동체 착륙했고, 활주로 끝을 넘어 계기착륙시스템(ILS) 안테나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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