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국세청과 법인세 불복소송 패소
대법원 "해외 특허사용료도 원천징수에 해당"
판례 변경 따라 세금 납부처 한국으로 변경

SK하이닉스 청주 공장. 사진=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 청주 공장.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환급 소송에서 대법원이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료도 원천소득에 해당한다며 33년 만에 판례를 뒤집고 과세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국세청은 해외 특허를 사용하는 기업들로부터 앞으로 수십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전망으로, 당초 미국 법인이 미국에 내는 세금을 한국 기업이 한국에 납부하는 방식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술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에 따른 특허사용료 세금 부과에 예의주시한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를 상대로 낸 경정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판결의 의미는 미국 회사가 소유한 특허에 대해 국내 회사가 사용료를 냈다면 과세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당초 법원은 특허권 속지주의에 따라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사용료를 과세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33년 만에 판례를 변경했다. 

이 소송은 2015년 SK하이닉스가 세무 당국에 초과 납부한 법인세를 환급해달라고 하면서 불거졌다. SK하이닉스는 2011년 미국 현지의 한 특허관리형법인(NPE)과 반도체 관련 특허권 침해 분쟁을 겪었는데, 2013년 화해계약을 맺고 분쟁을 끝내는 대신 SK하이닉스는 5년 동안 매년 160만달러의 특허사용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2014년 1월 사용료 160만 달러를 지급하고, 이에 대한 법인세 3억1000만원을 국내에 납부했다. 하지만 회사는 2015년 6월 한미조세협정에 따라 미국 특허 사용료가 국내 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법인세를 환급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사용한 특허는 미국에만 등록된 특허권이기 때문에 법인세법에서 정한 외국법인의 국내 원천소득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 경정청구를 거절했고 소송으로 번졌다. 쟁점은 한·미 조세조약상 ‘특허의 사용’이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였다. 한미조세조약에 따르면 특허의 사용 대가로 지급되는 사용료 소득 원천은 해당 특허 사용지로 정한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를 기준으로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권은 등록된 국가 영역 외에서는 침해될 수 없다”며 “이를 사용하거나 사용 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을 애초에 상정할 수조차 없다”고 판단했다. SK하이닉스가 낸 사용료는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관한 것으로서 국내원천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팹)에서 직원들이 방진복을 입고 걷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팹)에서 직원들이 방진복을 입고 걷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대법원까지 간 이 소송은 1·2심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대법원은 대법관 10인의 다수 의견으로 국내 미등록 특허권도 해당 특허 기술을 국내에서 제조·판매하는데 사용하는 것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면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미조세협약에서 ‘특허의 사용’은 특허권 자체가 아닌 특허 기술의 사용을 의미”라며 “특허권 속지주의는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의 사용지와 관련해서는 고려해야 할 원칙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특허권 속지주의란 특허기술의 국내 사용이 국외 특허권자에 대한 특허침해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이로부터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거나 그 특허기술에 재산적 가치가 없어 사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도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세청은 국내에 고정 사업장이 없는 미국 기업의 특허에 대해 법인세를 원천 징수할 수 있게 됐다. 국세청은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국내 과세권을 확보하면서 국가 재정 확충이라는 국세청의 근본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추후 기업의 특허사용료와 관련해 조단위의 막대한 세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비슷한 사건으로 불복 과정에 있는 세액 규모가 4조원을 넘어선다. 국세청은 “판례가 바뀌지 않았다면 국부 유출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수십조원에 이르는 세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광현 국세청장도 “국세청은 국부 유출을 방지하고 정부의 정책 추진에 밑바탕이 되는 국가 재원 마련을 위해 정당한 과세 처분을 끝까지 유지하고 국내 과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기업이 부담하는 법인세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국세청은 이를 부인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그간 특허사용료를 받은 미국 법인이 미 국세청에 내는 세금을 한국 기업이 한국 국세청으로 내도록 납부처만 바뀐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리 기업의 세금 부담이 더 늘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허를 제공하는 미국 법인도 미 국세청의 관련 법령에 따라 한국에 이미 세금을 낸 것으로 분류돼 이중과세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소송의 빌미가 된 특허사용료는 업계가 첨단화 될 수록 피해갈 수 없는 거대 비용이 됐다. 반도체 제조와 같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 다수의 해외 특허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허사용료 부담은 갈수록 폭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2분기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지급할 것에 대비해 잡아놓은 기술사용료 관련 충당 부채만 2조1369억원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국세청은 2008년 세법 개정으로 해외 특허사용료 과세를 시도했을 정도로 오랜 숙원 과제였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조세 정의가 실현됐다는 의미가 있으나,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3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고 1·2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는 등 시행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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