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보험 있어도 불안… 전세금 돌려받기 어려운 경우도
'실거주' 내세운 갱신 거절 늘어나… 주거 안정성 흔들려
임대료 신고제·상한제, 투명성 높였지만 실효성은 '글쎄'
임대차시장의 불안정성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국민의 주거생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임대차보호법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시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법으로 세입자 권리를 명문화했음에도 현실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임대차시장의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임대인과 임차인, 그리고 시장의 관점에서 임대차보호법의 빈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안채영 기자]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임대차신고제가 도입되면서 세입자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듯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전세사기와 실거주 명분의 갱신거절, 신규 계약 시 폭등하는 임대료 등으로 여전히 불안한 시장에 노출됐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일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횟수를 2회로, 임대차 계약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문제에 대응해 주거 안정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시장에서는 ‘과도한 임차인 보호’와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업계에서는 임대차 기간이 길어질수록 신규 계약 때 임대료 급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임대인들은 갱신청구권 행사로 수익이 제한되자 신규 세입자 계약 시 임대료를 크게 올리는 경우가 많다.
◆'보증보험' 무용지물, 반환 사각지대 여전
세입자 보호의 핵심 제도로 꼽히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이 사실상 유일한 안전장치고, 실질적 보증금 회수는 쉽지 않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전세보증금 보증사고는 총 7460건, 피해 금액은 총 1조591억원에 달했다. 전세사기 사태가 본격화된 2023년 2071건, 지난해 2455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까지 1200건이 넘어섰다.
대위변제 후 HUG가 임대인의 재산을 회수해야 하지만 근저당이나 압류, 다른 채권자와 분쟁이 얽히면 추가 소송이 필요하다. 그 사이 회수율은 낮아지고 공적 재원은 장기간 묶인다. 여기에 집값 하락이나 선순위 채권이 많을 경우, 우선변제권을 가진 임차인조차 보증금 일부만 돌려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확정일자 자동 부여 제도로 안심하는 세입자도 많지만, 실제 우선변제권 확보 여부는 근저당 설정 시점 등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소액임차인 보호 기준도 지역별로 달라 형평성 문제가 크다. 2023년 기준 서울은 보증금 1억6500만원 이하, 과밀억제권역(용인·화성·김포 등)은 1억4000만원 이하만 보호받는다. 광역시와 지방 중소도시는 이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 적용된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행정 경계선 하나에 따라 보호 범위가 달라지고, 기준 시점도 임대차 계약일이 아닌 근저당 설정일로 정해져 나중에 입주한 세입자는 보증금이 작아도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기 쉽다.

◆'실거주' 명분 갱신거절, 거주 지속성 불안
주거 안정의 또 다른 축인 ‘거주 지속성’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지만 예외적으로 임대인이나 그 직계가족이 실제 거주할 경우에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문제는 임대인이 이를 악용해 실거주를 핑계로 갱신을 거절한 뒤 곧바로 제3자에게 더 높은 임대료로 재임대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이다.
이 경우 임차인은 계약갱신청구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실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해 현실적으로 대응이 어렵다. 결국 세입자는 갑작스러운 퇴거와 이사 비용, 직장 이동, 자녀 교육지 변경 등 생활 전반의 불안정을 감수해야 한다.
◆임대료 신고제·상한제… 형식적 보호 '여전'
2021년부터 시행된 전·월세 신고제는 거래 정보를 공개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보증금 6000만원 초과, 월세 30만원 초과 계약에만 적용되고, 묵시적 갱신은 대상에서 제외돼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과태료 역시 당초 최대 100만원에서 최대 30만원으로 낮아지면서 제재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임대료 상한제 또한 갱신 계약 시 5% 인상 제한이 적용되지만, 신규 계약에는 시장가격이 그대로 반영된다. 임대인은 갱신 대신 신규 계약을 선호하고, 신규 세입자는 더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게 된다. 결국 갱신세입자와 신규세입자 간 임대료 격차가 커지는 '이중 가격 구조'가 형성됐다.
임대인은 관리비를 별도로 올리거나 항목을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임대료 인상을 우회하기도 한다. 국토교통부가 2023년부터 관리비 10만원 이상인 매물의 세부 내역 공개를 의무화했지만, 집주인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합당한 수준의 관리비’인지 중개 현장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임대차보호법이 세입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시장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결국 임대차시장은 제도가 늘었지만 실질적 보호 장치는 여전히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보증금 회수 절차의 현실화와 지역 기준 통일, 실거주 입증 강화 등 구조적 보완이 없다면 세입자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